장미십자탐정단 - 활약하다

 

 

백기도연대 - 雨 (1999/2008)

 

글쓴이 : 교고쿠 나츠히코

출판사 : 솔

 

 

교고쿠도 시리즈의 번외편.

스핀오프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하다. 뭐, 그렇다고해도 여전히 교고쿠도가 활약하는 것은 크게 다를 바가 없지만. 물론 비중은 다르다.

 

스핀오프라고 말하는 것처럼 이 작품의 중심에는 에노키즈 레이지로라는 인물이 있다. 기존 시리즈에서는 단지 교고쿠도의 친구로서 캐릭터가 갖고있는 독특함을 실제로는 잘 살리지 못하고 묻혀버린 느낌이 있었지만 본 작품에서는 당당하게 주연으로 활동한다. (하지만, 캐릭터 자체가 워낙 기인의 특성을 갖고있는지라 등장 자체는 많지않다)

 

에노키즈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가 이끌고 있는 장미십자탐정단이라는 단체 자체가 중심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탐정단에 의뢰가 들어오고 그 사건을 해결한다는 흐름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그 흐름이 꽤나 빠르고 흥미진진하다. (물론 기존 시리즈에 비해 상대적인 판단이다)

이유는 우선 작품의 이야기가 짧고(한 권안에 3편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런! 가격대비 효율성이...!), 그로인한 영향으로 교고쿠도의 해설또한 간결하다. (이 작가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들의 경향이 교고쿠도의 다소 가학적인 논리를 즐긴다는 특성이 있는데 나 또한 그러하다. 하지만 동일한 이유로 질려하는 독자들도 있는만큼 이 작품이 보여주는 구조와 흐름은 상대적으로 스피드있는 느낌이고 대중적이라는 결과를 낳게되었다)

그러므로.

기존 작품을 어려워하거나 질려했던 독자들도 좀 더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작품이 되었다. 이런 특성은 작가의 팬이든 아니든간에 긍정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을 듯하다.

 

본 작품의 또다른 특징 하나는 인칭의 변화다.

기존 작품이 3인칭 시점으로 관찰자적인 모습을 보였다면 이 작품은 장미십자탐정단과 얽히게 된 모토시마라는 인물을 통한 1인칭 시점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 점은 '백기도연대 풍' 에 가서도 동일하다)

1인칭 시점은 이야기의 서술에 있어서 3인칭보다 수월한 부분이 있다.

뭐, 작가의 부담이 덜 한다는 얘기다. 전지적 작가시점이라는 미명아래 모든 상황과 설정을 잡아내야하는 3인칭과는 달리 1인칭 시점은 작가의 시점을 캐릭터의 시점과 동일시해야하는 규칙으로 생략할 것은 과감히 생략할 수 있다는 이야기. (1인칭의 특성을 살리기 위한 독자적인 규칙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니 신경쓰는 것은 매한가지인가?)

 

하지만 1인칭 시점으로 인한 한계는 분명하다.

작가의 표현력 자체를 제한하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지. 그러므로 처음에 표현하기 쉽다고 1인칭을 시도하는 것은 후반에 이르러 작가 스스로 함정에 빠져드는 결과를 낳게 만들 수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 '드래곤 라자'의 이영도 작가가 있다.

그는 '후치'라는 캐릭터를 통해 1인칭으로 이야기를 서술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그 제한을 감당하지 못해 1인칭과 3인칭을 넘나드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쉽게 도전할 일은 아니란 이야기지.

 

그런 염려에 반해 이 작품은 그나마 호흡이 짧다.

분량으로 치자면 중편정도로 생각할 수 있을까? 그러나보니 1인칭 서술에 대한 부담이 좀 덜하고 그 서술 가운데 개성있는 캐릭터와의 관계와 사건을 설명하는 것에 할애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한 작품이 완성될 수 있게되었다. 미스터리 소설로써 1인칭 시점은 꽤나 잘 어울리는 것이라는 기본전제하에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었다.

 

여전히 전두지휘하는 것은 추젠지 아키히코, 교고쿠도의 몫이다.

그의 판단 아래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은 기존 시리즈와 동일하다.

하지만 기존 시리즈가 그의 포스가 압도적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그 가운데 살아나는 캐릭터, 즉 세키구치를 비롯한 친구들의 생존력을 생각하면 일반적인 캐릭터는 하나도 없을지도) 이 작품은 교고쿠도를 제외한 다른 캐릭터들이 마음껏 활개칠 수 있는 놀이공원같은 작품이다. 안타깝게도 세키구치나 기바같은 캐릭터들이 등장하진 않지만.

 

담겨져있는 3편의 이야기는 만족스럽다.

하지만 국내에 기존 시리즈를 출판했던 '손안의책' 출판사와는 다른 출판사인 '솔'이 출판함에 따라 번역물로써의 가치는 하락했나보다. 번역관련된 서평을 보면 좋은 이야기가 별로 없다. 물론 개인적으로 번역에 대해서 논할 정도의 실력도 없거니와 한 이야기도 없다. 하지만 최소한의 오타와 같은 점들은 번역에 문외한인 나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문제다. 이것은 작품 자체에 대한 문제가 아닌 출판사의 문제다. 책 자체만 고급스럽게 치장하면 독자의 손길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가? 오타 조차도 책임지지 못하는 편집은 개나 줘버리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본 책만 오타가 있었던가?

관련 서평을 보니 오타에 대해 지적하는 이야기있어서 나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안그래도 기존 시리즈와는 동떨어진 번역판이 나와서 의아해하고 있는데 (손안의책에서 작품 출판 순서대로 번역본을 내놓고 있는 상황에서 중간의 작품들을 건너뛰고 본 작품을 번역, 출판했다. 그런 결과는 본 작품 내용가운데 언급되는 사건들의 이해와 연관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출판권을 어떻게 취득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순서는 작품에 대한 이해를 저해하고 독자의 즐거움을 방해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그냥 출판해준 것에 대해서 감사해야할 문제인가?) 책의 완성도 또한 떨어지니 원작의 가치를 훼손하기만한 결과이다.

 

분명 이 작가의 책은 번역하기가 수월치않은 작품이다.

워낙 곁다리로 들어오는 정보가 많고 한국인으로 알 수없는 문헌들에대한 정보가 많아 100% 이해라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작가가 말하는 이야기는 흥미롭고 캐릭터도 개성있다.

그래.

독자 입장으로 이런 이야기를 접할 수 있게된 것에 감사하고 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