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살인자들의 섬 - 텍스트의 전환


살인자들의 섬 Shutter Island (2004, 2003)


데니스 루헤인
황금가지/ 김승욱/ P.494



올해들어 데니스 루헤인을 비롯한 몇 명의 영미작가들의 글들을 읽어오고 있다. 특정 작가의 이름이 눈에 들어오면 그 작가의 책들을 이왕이면 출판순서대로 읽고있는 중인데, 특히 데니스 루헤인의 경우 그간 출판된 작품들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켄지&제나로' 시리즈 때문에 출판순서대로 읽는 것은 꽤 중요하다. 더불어 다른 작가들 또한 작가의 발전과 변화를 읽어낼 수도 있기에 의미있는 선택이 될 수도 있다.
사실 영미작가의 작품을 읽기는 오랜만이다. 전혀 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한 작가의 작품군을 훍어가는 등의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중고등학교 때 영미작가의 글에 집중했던 이후로 처음인 듯하다. 당시엔 에코와 톨킨, 킹의 작품들에 열광했었고[각주:1] 그 외에 콘웰, 크라이튼, 그리샴, 쿤츠 등의 장르적 특성이 드러나는 대중소설에 몰입했었다. (지금은 고전으로 분리될만한 추리소설들은 초등학교때 띄었다.) 이후 20대에는 소설보다는 인문학 서적에 집중했었고, 30대에 이르러서는 라이트노벨에 시선을 집중해왔다.[각주:2] 그리고 작년부터 일본문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영미문학에 대해 관심이 함께 증폭되어 그동안 밀려놓고 보지못했던 책들을 몰아보고 있는 중이다. 물론 개인적 취향에 맞고 호기심을 느끼는 작가에 한 해서이지만.


섬의 정신병원에서 한 명의 환자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것을 수사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 두 명의 연방수사관이 찾아왔다. 하지만 수사관인 테디와 처크는 수사진행의 난관에 봉착한다. 그리고 정신병원 관계자들이 자신들에게 숨기고 있는 사실이 있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정신병원 관계자들이 꾸민 음모가 조금씩 드러나면서 접한 사실은 뜻밖의 것이었는데......


데니스 루헤인 작가 본인이 밝히는 바에 의하면 그의 대표작은 '켄지&제나로' 시리즈라고 말하지만 국내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그의 작품은 그 시리즈가 아닌 듯하다. '살인자들의 섬' 은 국내에서 데니스 루헤인의 작품 가운데 가장 먼저 소개된 작품이며(먼저 발표되었으며 영화화되어 수많은 영화제를 휩쓴 '미스틱 리버' 보다도 먼저 소개되었다) 올해들어선 영화가 개봉됨으로 다시 한 번 시선을 끌기도 했다. 한국에서만큼은 그의 작품가운데 가장 많은 이들에게 읽힌 작품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은 일반인의 입장에서 작품에 대한 가치를 이해하는데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도 하다. 대중과 평론, 모두에게 사랑받는 그의 작품 가운데서도 남달리 눈에 띄는 작품을 말한다면 '살인자들의 섬', 이 작품이 될 것이다.


나처럼 '켄지&제나로' 시리즈를 먼저 접한 경우, 이 작품이 풍기는 분위기는 사뭇 적응하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서로 상이한 느낌을 전하는 작품이다. 쉴새없이 던지는 주인공의 농담으로 분위기의 균형을 이루는 '켄지&제나로' 시리즈와는 달리 이 작품은 너도나도 구덩이를 파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한 없이 파내려가는 구덩이를 보면서 우울하고 음습하며 공포스럽기까지하는 분위기를 경험하다가 적응이 될만한 시점에서 뒤통수를 냅다 쳐버리는 느낌이랄까. 장르문학으로써의 대중적 재미는 충분히 보장할만하다고 여겨질 정도이다. 다만, 이 작품에 대해서 반전의 비중을 너무 크게 생각한다면 반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지루하다고 판단하는 착오를 일으킬 수도 있다. 확실히 이 작품의 배경과 상황은 다소 전형적인 스릴러의 그것과 닮아있다. 폭풍으로 고립된 섬과 정신병원, 사라진 환자, 그리고 음모 등과 같은 요소를 접하면서 21세기 현 시점에서 익숙함을 느끼는 것은 무리가 아닐 듯하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진행하는데 있어서 전형적이라고 판단한 요소들의 배치, 관계를 묘사한 것은 스릴러로써 충분한 가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다. 즉, 반전을 기대하지 않아도 즐길만한 점은 충분히 존재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이러한 점은 개인 취향에 따라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더불어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개인과 단체, 정상과 비정상적 특성의 대립은 적용 여부에 따라서 다양하게 해석이 가능한 면모를 담고 있어서 흥미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설정은 독자의 감성과 사고를 자극한다는 점에 있어서 의미가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개인적으로 해석, 이해되는 부분은 그래도 개인적인 것으로 남겨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적 특성을 명백히 드러내는 작품으로 그러한 특성을 즐기는 것으로 일반화된 장점을 평가하는 정도가 딱! 좋을 듯하다. 이런 이야기를 굳이 언급하는 것도 이 곳이 불특정 다수에게 오픈되어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해가 정의, 정답이 될 것이라고 볼 수도 없을 뿐더러 이 작품 역시 그러한 것을 찾으려는 작품은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적 사유는 개인적 사유로 남겨두는 정도가 좋다. 표현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해를 정의라 믿고 강요하는 것 때문이다. 말하는 입은 듣는 귀를 동반해야 하는 것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에 의해서 '미스틱 리버' 가 영화화 되었고, 벤 애플렉에 의해서 '가라, 아이야 가라' 가 영화화되었으며, 이 작품은 마틴 스콜세지에 의해서 영화화되었다. 그러고보면 데니스 루헤인의 작품은 흥미있는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스스로 시각화된 묘사에 능하기도 하다. 앞서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분위기' 나 '이미지' 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하였는데 그만큼 시각적 자극을 유도하는 표현이 잘 되어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아직 영화를 보진 못했지만 내가 글을 읽으면서 상상했던 그러한 것들이 얼마나 잘 영상화되었는지가 기대되고 궁금하기도 하다. 20세기 후반에서부터 지금까지 왕성한 작품 활동을 벌이고 있는 그의 이러한 특성을 보면 향후 21세기의 문학에 대한 모습을 조심스레 짐작할 수 있기도 하다. 21세기와서 텍스트는 기존보다 그 이상의 것을 기대받고 있다. 시청각을 자극하는 컨텐츠가 넘쳐나는 지금, 독자의 상상력에만 의존하는 기존 성향에서 벗어나 동일한 자극이지만 독자로 하여금 공감각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킬만한 결과를 기대받는 것이 현재의 텍스트인 것이다. 최소한의 요구로 시각적 묘사를 충실히하는 것을 기반으로 텍스트가 자체가 어떻게 진화하고 변화할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변화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기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데니스 루헤인은 자신의 텍스트가 이미지로의 변신이 가능함을 보여주었고 실제로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의 텍스트가 시대의 흐름에 맞춰 진화할 수 있을 것인지는 두고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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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들의 섬 - 8점
데니스 루헤인 지음, 김승욱 옮김/황금가지

  1.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꼽으라면 움베르트 에코, J.R.R. 톨킨, 스티븐 킹을 꼽는다. 여기서 둘을 꼽으라면 스티븐 킹이 빠진다. 그리고 다시 한 명을 꼽으라면 질문한 이에게 주먹을 날리겠다. [본문으로]
  2. 일반적으로 '라이트노벨' 혹은 '라노베' 로 불리우는 작품군과는 좀 다르다. 출판시장에서 라이트노벨로 직접적 구분을 하는 작품들, 특히 일본 작가들의 작품은 몇 권 본 것이 없다.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 가볍게 읽어나갔던 장르문학들을 말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소비적으로 읽어나갔던 책들을 총칭해서 이렇게 부르곤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