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나전미궁 - 사쿠라노미아 월드를 위하여


나전 미궁 (2010, 2006)



가이도 다케루
예담/권일영/P.479



국내에서도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 으로 유명한 가이도 다케루의 신작이다...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국내에 번역되어 출판된 것이 최근의 것일 뿐이지 사실 그의 두 번째 작품이다. 국내에선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 에 이어 '나이팅 게일의 침묵' 과 '제너럴 루주의 개선' 이 먼저 소개되었지만 실제론 두 작품이 '나전미궁' 이후에 쓰여진 작품이라고 한다. 책 속에서 옮긴이는 다구치-시라토리 콤비의 인기를 이어가기위한 출판사의 선택이었다고 설명한다.


덴마는 도조대학 의학생이다. 말이 의학생이지 연신 낙제를 면치못하는 그렇고 그런 학생일 뿐이다. 그런 그가 신문사 기자인 친구 요코의 꾀임에 빠져 사쿠라노미야 병원에 잠입하게 된다. 결국 어느 한 남자의 실종사건을 계기로 원치않는 잠입 수사를 강행하게 되면서 더 큰 음모와 맞닥뜨리게 되는데......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작품 역시 의학계의 논란이 될만한 소재를 활용하고 있다. 이름 조차 낯설은 '종말기 의료' 행위에 대한 것인데, 간단히 말해 소생 가능성이 매우 적은 말기 환자에 대한 의료행위 혹은 환경 일체를 일컬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주무대가 되는 사쿠라노미야 병원을 통해 제시되어지는 '종말기 의료' 는 꽤나 신선한 것이기도 하다. 말기환자의 질병을 치료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닌 그들이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삶의 질을 높이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는 기획은 의학계에 문외한인 나에게도 꽤나 설득력 있어보이고 신선한 것이었다. 물론 작품 속 드라마를 구성하기 위해 단지 그것 뿐이 아닌 숨겨진 이야기들이 꽤 얽혀있고 윤리적인 측면에서 상충되는 점들도 있기에 마냥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래도 이런 이슈는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읽고자하는 독자의 동기를 충족시켜주고 있으니 이견은 없다.


이슈도 좋지만 역시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캐릭터이다. 앞서 이 작품보다 다른 작품이 먼저 출판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두 주인공 캐릭터에 있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 사실은 가이도 다케루 작품의 가장 큰 특성이 캐릭터에 있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비록 캐릭터의 윤곽이 너무 뚜렷하여 현실성이 결여된 듯한 느낌도 없진 않지만 작품 속에선 그런 점들이 장점으로 잘 승화된 편에 속한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도 그러한 캐릭터의 특성은 여전하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비록 기대하는 다구치-시라토리 콤비는 아니지만 그에 버금갈만한 새로운 캐릭터를 배치하여 또 다른 재미를 주고 있었다. 특히 '제너럴 루주의 개선' 을 먼저 보신 독자라면 간혹 등장하는 '히메미야' 라는 인물을 알고 있을터인데, 그 인물이 이 작품에선 주력 인물로 등장하면서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각주:1] 이에더해 주인공인 덴마 다이키치와의 조합은 작품 속 유머러스한 특성을 더욱 강화하여 재미를 주고 있다. 유머만큼은 다구치-시라토리 콤비를 능가한다고봐도 좋을 듯하다.
물론 주연 캐릭터 외에도 개성있고 한 줄로 설명가능할만한 조연들이 여럿 등장하고 있으니 그들간의 관계를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다만, 그러한 캐릭터의 가벼움 때문에 이슈에 대한 무게감이 반감될 수 있을 듯하다. 부담을 줄이고 접근성을 높였다는 점에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으나, 역시 논지가 흐려지는 듯한 느낌은 부정하기 힘들 듯하다. 작가의 주된 특성 중 하나는 서로 상반되는 것을 대치시켜 놓는 구도를 자주 사용하는데, 그것이 캐릭터이든 특정 그룹이든, 아니면 상황이든간에 그런 대치관계를 통해서 드라마를 형성시키는 것에는 꽤 유능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런 구조가 단조로운 형태로 드러나게 됨으로 가져올 단점들도 분명 존재한다. 평면적인 캐릭터를 비롯해서 이야기의 구조도 다채롭다고 말하긴 어렵다. (요즘 데니스 루헤인의 작품을 함께 읽었다보니 더욱 비교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에대해선 비난할 거리는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작가 스스로 자신의 스타일을 위한 선택이었으리라고 생각할 뿐이다. 앞서 말했듯이 실제 의사가 의학계의 이슈를 소재로 직접 쓴 미스터리 소설치곤 매우 쉽게 읽히고 접근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뭐든 장단점이 있는 법이다.


이 작품은 가상의 도시 사쿠라노미야를 구축하는데 중요한 축이 될 작품이다.[각주:2] 흔히 '사쿠라노미야 월드' 라고도 지칭하는 작가의 이 세계관에서 지역적인 의미나, 인물관계에 있어서나, 향후 또 다른 사건과의 연결점으로 활용되는 점에 있어서나 큰 의미를 갖고있는 작품이라 여겨진다. 최근 신작소식을 들어보면 작가는 지금껏 현재의 사쿠라노미야를 구축하는데 힘써왔다면 이젠 과거의 사쿠라노미야도 세우기위해 노력하고 있는 듯하다. 하나의 완벽한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시간축을 기점으로 과거와 현재가 함께 세워져야 함은 당연할 터. 앞으로 더욱 완성도를 높여갈 작가의 세계에 언제든 빠져들 용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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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전미궁 - 8점
가이도 다케루 지음, 권일영 옮김/예담

  1. '제너럴 루주의 개선' 에서도 덜렁거리는 간호사로 등장했던 히메미야는 이 작품을 통해 더욱 본격적으로 덜렁거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제너럴 루주의 개선' 마지막에 히메미야가 다른 병원으로 파견되어지는 이야기가 잠깐 묘사되는데 그에대한 구체적인 이야기가 이 작품이다. 국내에선 '제너럴 루주의 개선'이 먼저 소개되었지만 실제론 나전미궁이 먼저 발표된 책이었기에 그와같은 인용이 가능했던 것이라 생각된다. [본문으로]
  2. 사실 두번째 작품이었으니 작가는 이미 중요한 축의 역할을 할 작품을 시기에 맞게 썼던 것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