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꿈을 걷다 2010 - 장르문학 단편을 즐기자


꿈을 걷다 2010 (2010)


김이환/김지훈/문영/수담옥/이재일/장경/좌백/진산/하지은/한상운/홍성화
로크미디어/P.328



로크미디어는 장르문학 전문 출판사이다. 이렇게 얘기하니 해당 범위가 좀 넓긴한데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젊은 층에게 주로 소비되는 대중문학, 즉 판타지, 무협소설을 주력으로 출판하는 출판사이다. 마니아 층도 형성되어 있고 전국 수천개의 도서대여점의 고정 수요도 있기에 수익성은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될지 모르겠지만 양적으로 급속하게 성장해버린 판타지, 무협 장르의 퀄리티를 의심하는 여론은 여전하다. 팔릴만한 글을 쓰고 출판해야 된다는 작가와 출판사의 고민은 양이냐 질이냐의 문제에서 발생하게 된다. 작가들은 독자의 바람과 자신이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고 출판사는 수익성과 문학성(자사의 이미지가 특히 관련되었겠지만)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갈등의 절충안은 질적 향상을 꾀하는 레이블의 기획이었다. 로크미디어의 경우 '노블레스 클럽' 이라는 레이블을 통해서 작가의 갈등해소와 출판사의 이미지 향상을 바라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 레이블을 통해서 출판된 장편소설을 읽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작가의 일반적인 연작소설과는 매우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질적 논란을 어느정도 쇄신시킬 수 있을 정도의 퀄리티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야기도 참신하고 통속적인 설정도 없었다. 어감의 차이로 판타지 소설과 환상문학이라는 표현의 차이를 질적 차이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런 기준에 따르자면 환상문학으로 분류될 수 있을 법한 글이었다. 독자들이 받아들여준다면 의도는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기반은 갖춰진 셈이다.


이 레이블을 통해 이뤄진 또 다른 시도는 단편집의 출판이었다. 작년 '꿈을 걷다 2009' 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단편집은 '경계문학' 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질적으로 향상된 환상문학을 공급하였다. 주로 판타지 연작소설을 쓰던 작가들을 통해서 흥미로운 단편들을 선보였다. 검과 마법에 얽매여 통속적인 글을 쓰던 작가들이 마음편히 상상력을 펼쳐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시도는 올해도 이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올해는 무협소설을 전문적으로 쓰던 작가들의 단편이 소개되고 있었다. 무협 설정을 활용한 단편은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출판된 글 중에선) 그 의미는 특히 더 돋보였다. (물론 전적으로 장르의 편중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비중의 차이는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판타지나 무협 장르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충분히 흥미로운 경험을 제공해줄 터였다.


개학 날 - 김이환
페르마의 부탁 - 김지훈
아내를 위하여 - 문영
일검쟁위 - 수담옥
문지기 - 이재일
미싱 링크 - 장경
마음을 베는 칼 - 좌백
안다미 - 진산
나를 위한 노래 - 하지은
강호 - 한상운
세상 끝으로 - 홍성화


총 11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이 중에는 독자적인 스토리텔링을 보이는 단편이 대부분이지만 김이환의 '개학 날' 의 경우 그의 장편 '양말 줍는 소년' 의 후일담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보니 나처럼 작가의 장편소설을 읽지 못한 사람들에겐 다소 몰입도가 떨어지거나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독자적으로 서사구축이 안된 글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른 글들은 꽤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모든 글들은 첫페이지에 작가의 인사말이 담겨있는데, 그들의 얘기를 보노라면 어깨의 힘을 빼고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자신의 상상력을 그려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였다. 그러다보니 독자인 나 역시 좀 더 마음편하게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고 할까. 내가 그들의 글에 호기심을 느끼듯 그들 역시 특정된 상상력에 호기심을 느끼고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 인사말을 통해 드러나고 있었다.


판타지 설정을 활용한 단편들도 몇 편 있지만 개인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글은 무협 단편소설이었다. 전형적으로 거대서사를 이루곤 했던 무협소설이 단편의 형태로도 얼마든지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를 입증할 수 있었다. 무협장르에 익숙한 독자에게는 신선한 느낌을 줄 수 있을 듯하고, 그러지 않은 독자 역시 무협 특유의 설정은 비교적 드러나지 않고 이야기를 구성하는데 비중이 실려있으니 큰 부담없이 즐길 수 있을 듯하다. 어쨌든 이 책 역시 단편집의 부담없는 호흡과 이야기를 즐길 수 있는 특성이 고스란히 담겨있으니 독자의 선택만이 관건이다.


최근 여러 출판사들을 통해서 장르문학 단편집들이 출판되고 있다. 분명 소비성 짙은 연작소설들에 비해 읽는 맛의 여운이 더 길게 남는 글들이 담겨있지만 그렇다고 이러한 단편집을 통해서 문학성을 따지고 할 바는 아니다. 그냥 이러한 글들이 취향에 맞는다면 즐겁게 읽는 것으로 족할 뿐이고, 작가들 역시 그러한 바람을 갖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무난하게 즐길 수 있는 상상력을 맛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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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걷다 - 8점
김이환 외 지음/로크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