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책 _ 왜 이제서야.
피의 책
글쓴이 : 클라이브 바커
출판사 : 끌림
클라이브 바커의 이름을 접한 것은 '작가'로써가 아닌 '영화감독'으로써였다.
물론 그 영화는 '헬 레이저'.
중학교 2학년, 공포영화의 묘미를 깨닫기도 전에 '헬 레이저' 라는 영화에 잠시 연출된 에로틱한 장면으로 접하게 되었지만 얼마 지나지않아 '헬 레이저'라는 작품의 매력에 빠져 '클라이브 바커'라는 이름을 깊이 각인하게 되었다.
하지만 실제론 직접 연출한 영화도 얼마 안되었고 오히려 원작 혹은 각본, 제작으로만 프로필을 채워 온 그를 이해하기는 2% 는 커녕 20% 도 부족한 상태였다.
실제로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것은 1984년에 출판된 단편집이었다.
'피의 책' 이라는 제목을 지닌 이 책이야말로 '클라이브 바커' 라는 인물의 매력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글' 이라는 도구를 깨닫는데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25년전 이 책을 바로 접할 순 없었을지라도 국내에선 2000년에 번역, 출판되었던 기회를 놓쳤던 것은 분명 시간낭비였다.
단편이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 책은 그렇게 얘기할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피의 책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
야터링과 잭
피그 블러드 블루스
섹스, 죽음 그리고 별빛
언덕에, 두 도시
드레드
로헤드 렉스
스케이프고트
,이상의 차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옮긴이가 밝힌대로 원작의 순서대로 구성된 번역판은 아니다. 옮긴이와 출판사의 판단으로 추려진 2008년 판 번역본이 선택이 옳았는지 판단할 순 없지만 최소한 담겨있는 단편들은 좋았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특히나 돋보이는 것은 도입부를 구성하고 있는 '피의 책'. 이 책 자체의 매력 가운데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피의 책'은 독창적인 인트로를 장식하면서도 그 자체가 독자적인 작품으로써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책의 겉표지를 장식한, 사람의 몸에 새겨진 피 빛 어린 글자들이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것은 단순히 문신같은 그 글자가 아름답다기보단 그에 얽힌 사연과 과정, 이야기가 존재하기에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던 듯 하다.
물론 이 책 속에 담긴 다른 이야기들도 충분히 매력적인데 그 중에서도 '언덕에, 두 도시'는 압도적이다.(물론 개인적인 기준으로. 이미 영화화되어 가치를 증명한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 같은 작품도 있지만) 도시와 인간의 관계, 단순히 창의적인 상상력만 돋보이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성찰하고 있는 점들이 너무나 인상깊게 다가오는 작품이었다. 껍질의 빛깔도 아름다웠지만 막상 한 입 배어무니 입 안 가득 퍼지는 과즙처럼.
1984년에 출판되었다는 시대의 반영인가?
요즘 장르문학의 글들은 문장에서부터 기능적인 냄새를 맡을 수가 있다. 주어진 역할에 충실한 문장들은 효율적이고 간결, 명확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장르적 본질을 전달하는데 조금은 미숙한 느낌이든다. 그렇다고 고전이라고 불리울만한 작품들을 접하면 감성적이다못해 끈적거리는 문체로 인해 잘 읽히지 않는 고충을 겪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은 과도기적인 변화를 반영한 것인지 적절한 수준의 감성과 기능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어 좀 더 매력적으로 읽힐 수 있었던 듯 하다. 뭐, 부담없이 하지만 튼실한 느낌으로 읽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왠지 칭찬만 늘어놓은 듯 하지만 그냥 각 단편들의 이야기가 좋았다는 것이고 인위적으로 구성된 편집에 대해선 딱히 할 말은 없다. 즉, 나쁘게 얘기할 것도 좋게 얘기할 것도 없단 말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원작의 순서대로 번역한 것이 아닌 2년간 출판된 6권의 단편집에서 좋다고 평가된 단편을 추려낸 것이다보니 한 권에 담겨진 작가의 의도같은 것은 그냥 무시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작가의 의도가 있었다면. 원작을 직접 접한 것은 아니기에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렇다보니 각 단편들은 일관성있는 테마를 지닌 것도 아니고 묶음으로써의 매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독자적인 에피소드를 그냥 즐기는 것이 독자의 입장에선 최선의 선택일 뿐이다. 2000년 다른 출판사에서 번역, 출판된 책이 아직 절판되진 않은 모양인데 2008년 번역판에 포함되지 않은 단편을 포함하고 있다. 원작의 편집대로 번역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추가적으로 접해보고 싶을 정도로 현재 국내에 번역된 상황은 썩 좋아보이진 않는다. 역시 옮긴이가 밝히듯 추려낸 다른 단편집이 출판된 예정이라곤 하나 역시나 추려낸 것이다. 전편이출판될 계획은 아직 없는 듯 하다. 독자 입장에선 그냥 아쉬울 뿐이다.
공포소설을 즐기는 독자라면 필독서라고 일컬어도 좋을 정도의 완성도를 보이고 있다. 러브 크래프트가 독자들에게서 사랑받는 것만큼 아껴줘도 좋을 듯 하니 충분히 고려해보자.
참고로 2000년에 출판된 책이 2권이 있고, 저렴한 포켓북으로도 출판되어있다. 포켓북은 '피의 책'과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 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2권의 책이 있다. 그 두권은 463 페이지로 이뤄진 본 책의 단편들을 나눠서 출판한 것이니 참고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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