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46번째 밀실 - 주 이야기와 보조하는 소재의 좋은 궁합


46번째 밀실 (2009, 1992)


아리스가와 아리스
북홀릭



앞서 리뷰했던 대학생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화자로서 등장하는 작품군과 또다른 형태를 띄고 있는 시리즈의 첫작품이다. 즉, 추리소설가인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화자로 등장하는 시리즈이다. 대학생인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에가미 선배의 보조로 역할을 수행하며 1인칭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구조와 동일한 형태로 이뤄져있다. 캐릭터도 유사한 점이 있어서 마치 대칭적인 적인 관계로 이뤄진 시리즈로 보이기도 하지만, 좀 더 세밀한 부분에서 차별화를 이루기도 한다. 개인적으론 아리스와 에가미의 콤비보단 아리스와 히무라의 콤비에 좀 더 관심이 실린다.

추리소설가인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마카베 세이지 작가의 별장으로 초대받아 가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때면 마카베 작가는 출판관계자나 지인들을 별장으로 초대하곤 했는데 작년에 이어 올해도 초대받게되었다. 그리고 작년과 다른 점이라면 친구이자 범죄학교수인 히무라 히데오와 함께 초대받았다는 점이다.
그렇게 눈 내리는 겨울날 유명 추리소설 작가의 별장엔 출판관계자 몇 명과 추리소설가 몇 명, 그리고 임상범죄학자 한 명이 모이게 되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하는 어느 때에 그들 사이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눈 내리는 겨울의 어느 별장.
어디선가 보암직한 설정이지만 짐작하는 것처럼 활용되진 않았다. 실제로 사건 발생 후, 경찰이 수사를 진행하게 되니 지레짐작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역시 본격 추리소설에서 쉽게 발견되는 특성들로 이뤄져 있으니 그런 분위기를 즐긴다는 입장으로 이 책을 접한다면 일정 수준의 만족감은 느낄 수 있을 것이라 보여진다. 특히 추리소설가들의 모임 가운데서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 설정을 통해서 연상되는 이미지들이 존재할 것이라 생각되는데, 그와 어울리는 장치나 설정들도 준비되어 있으니 만족감을 위한 최소한의 기본 조건은 갖추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 첫 데뷔를 이룬 아리스와 히무라 콤비를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다. 아무래도 대학생 아리스 시리즈를 본 사람이라면 두 콤비를 비교하게 될터인데, 두 콤비는 마치 나이어린 캐릭터가 성장해서 어른 캐릭터를 이룬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유사한 특성을 보임과 동시에 시간의 흐름을 거쳐 정서적인 면에서 좀 더 어른스러운 맛을 보여주는 차이도 있다. 대학생 캐릭터들이 낭만적인 감성을 지닌 캐릭터로 비춰졌다면 30대 중후반의 나이를 지닌 어른 캐릭터는 낭만적 감성을 걷어내고 좀 더 현실적인 정서를 갖춘 모습으로 보여진다. 각 콤비의 관계에 있어서도 역시 비슷한 특성을 보인다. 개인적으론 같은 세대적 동질감을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아리스와 히무라 콤비를 보면서 나와 어떤 친구와의 관계가 떠오르기도 했다. 하핫.


미스터리와 관련된 주된 이야기를 즐기는 것도 흥미롭지만 이 작품에는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지만 보조 역할을 하는 재미있는 소재들도 등장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등장인물인 마카베 세이지 작가의 입을 빌어 이야기하는 추리소설의 이상론이다. 아무래도 저자인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이상향이라고 볼 수도 있는 이 이야기는 추상적이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도 한 번쯤 생각할만한 화두를 던져주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실재하는 한 권의 책에 대한 언급이었는데, 로버트 애디라는 저자가 쓴 'Locked Room Murder' 라는 책이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처럼 그동안 발표된 추리소설 속의 밀실 살인 트릭을 모아놓은 책이다. 개정증보판에서는 2019가지에 달하는 밀실트릭을 기록해놓았다고 하는데 혀를 내두룰 정도이다. 어떤 형태의 밀실이며 트릭은 어떤 것인지 간단하게 기술해놓은 정도라곤 하지만 수천 가지의 트릭을 수집해놓은 책이라니 그 사실만으로도 가치가 있어보였다. [각주:1]


다만 기대와 다른 점이 있어 아쉬운 점이 있었다. 앞서 눈 내린 별장이 열린 공간으로 활용되었다고 언급했었는데 개인적으론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클로즈드 서클' 로 다뤄졌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얘긴고하니 추리소설가들이 다수 등장하는 설정이다보니 논리든 상상력이든 그들간의 대결구도가 이뤄졌으면 좋겠다라는 기대를 품었으나 배경이 닫히지 않고 열려있다보니 수사의 주체가 그들이 될 수가 없었다. 경찰들이 수사의 주체가되고 그나마 히무라 히데오라는 범죄학 교수가 서포트하는 구조가 성립되어 버렸다. 물론 아리스와 그가 주인공으로서 더 부각되는 모습이 연출될 수 있었지만. 개인적인 아쉬움일 뿐이다.


역시 본격 추리소설로써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적절한 수준의 기대를 만족시켜 준다. 게다가 작가의 다른 시리즈와는 또 다른 맛을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에 차별화된 맛도 볼 수 있을 듯하다. B6 판으로 400여 페이지의 분량도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요소이기도 하다. 본격 추리소설을 즐기는 독자에게는 또 다른 선택이 생겼다.


★★★☆


+ 본문의 이미지는 인용의 용도로만 활용 되었습니다.
+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출판사에서 갖고 있을겁니다.


46번째 밀실 - 8점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최고은 옮김/북홀릭(bookholic)

  1. 온라인을 통해 찾아보니 국내 온라인 서점에는 흔적도 없고, 아마존에서도 중고로 몇 권이 나와있는 정도였다. 가격도 수백달러에 달할 정도.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