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나는 사랑을 죽였다 - 심리의 활용도가 눈에 띈다


나는 사랑을 죽였다 (2006)


류성희
산다슬/ P.267



글을 읽으면서 '문체' 에 대해서 크게 의식하지 않는 편이다. 문체를 통해서 미학을 찾기보단 작가와 독자 사이의 자연스러운 전달력 정도만을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글에 대한 느낌을 정리할 때도 문체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그리고 그 대상이 번역서인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작가 본연의 것이라고 말하기 힘든 글을 보면서 문체를 따지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각주:1]


그렇기 때문에 문체의 비중을 크게 고려치 않는 나에게도 국내 작가의 글과 번역서의 글은 차이를 느낄 수 있다. 특히 정서의 전달력은 번역가의 역량에 따라서 큰 차이를 보이곤 하는데 최근 번역 소설만을 읽다가 오랜만에  국내 추리소설을 읽으니 그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글을 쓰는 이들이 필사를 할 때 국내 소설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게다가 '심리추리소설' 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이 글은 구조적인 특성을 메리트로 삼는 추리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캐릭터의 정서 전달력이 뚜렷하게 돋보인다. 여류작가의 특성이라고 보아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정말 심리추리소설이라는 타이틀에 걸맞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여성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삼거나 비중이 높은 캐릭터로 활용하기 때문에 미묘한 심리 변화를 표현할 구조 또한 갖추고 있었다.


10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된 이 단편집은 짧지만 인상깊고, 소소하지만 공감하기 쉬운 이야기들을 보여주고 있다. 추리소설 문화가 발달된 영미권과 일본 소설들이 많이 번역되어 국내에 들어오고 있지만 이처럼 국내 추리소설 역시 발군의 글솜씨를 자랑하고 있으니 꾸준한 관심을 가져주는 것도 좋겠다.



당신은 무죄
- 여주인공 캐릭터의 심리가 다른 캐릭터의 심리에 상응하여 다채롭게 변화되는 모습이 일품이다. 특히 표면화되지 않은 갈등이 글 속에서, 그리고 독자의 내부에서 맞물리는 흐름은 이 글의 정점을 찍게 만든다. 작가가 신춘문예를 통해 데뷔할 수 있게 된 데뷔작이기도 하다.



코카인을 찾아라
- 대사의 느낌이 좀 오래된 뉘앙스를 풍기지만 여주인공의 불안과 초조함을 표현하는 모습은 절절하다.



추리작가 VS 추리작가
- 언뜻 제목만 보면 서로 다른 추리작가가 추리대결을 펼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예상에서 벗어난 이야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즐거움을 느끼게 만든다. 해피엔딩을 지향하는 글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유쾌하게 볼 수 있었던 이야기. 특히 작가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오마쥬하는 모습 또한 유쾌함에 한 몫했다.



봉선화 요원 & 384 요원
- 조금은 낯선 설정을 즐기는 것은 독자의 몫. 비약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설정을 통해서 본문과는 또 다른 이야기를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비명을 지르는 꽃
- 장편으로의 확장도 노려봄직한 소재를 다루고 있으나 요즘은 워낙 유사 설정을 다룬 작품들이 많이 있어서 식상해버릴지도 모르겠다. 단편이기 때문에 더욱 가치를 발하는 그런 글일지도.



사쿠라 이야기
- 실린 이야기 중에서도 남다른 인상을 남긴 것은 낯선 곳에서 한국의 이야기를 발견했기 때문일까. 주인공인 젊은 여성과 노년의 일본인 여성과의 관계에서 정적이지만 깊은 떨림을 느낄 수 있다.


살인 미학
- 도입부를 조금은 이질적으로 느낄지 모르겠다. 하지만 뒤이어 나오는 이야기는 우스우면서도 당황스런 이야기를 즐길 수 있다.



인간을 해부하다
- 다르다는 특성은 대상에게선 당연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것. 인위적인 느낌도 없지는 않으나 무난하게 볼 수 있는 이야기.



벽장 속에서 나오기
- 두 여자와 한 남자. 초반부터 진행될 이야기를 어느 정도 점쳐볼 수 있었지만 그들간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치열함은 충분히 흥미로웠다. 역시 이 작가는 여성심리를 표현하는데 능하다.



용병 K
-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은 다른 무언가를 얻는 것이기도 한 것인가? 낯선 캐릭터의 고민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


+ 본문의 이미지는 인용의 용도로만 활용 되었습니다.
+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출판사에서 갖고 있을겁니다.
+ 깜짝 놀란 사실 중 하나는 이 책 뒤편에 물만두님 의 서평이 실려있다는 것이었다. 알라딘서재를 운영중이신 물만두님의 미스터리 문학에 대한 사랑과 내공은 나같은 사람의 것과 비할 바가 아니다.


나는 사랑을 죽였다 - 8점
류성희 지음/산다슬



  1. 그래서 번역서에 있어서 번역가의 비중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단순히 정보전달력만을 고려하는 정도만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이 요구되어야 한다고 생각되지만 사실 그런 조건을 충족시키는 번역가는 그리 많지 않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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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0 Comment 6
  1. DDing 2010.07.24 08:09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밤을 새서 그런지 사랑이 사람으로 보였네요.
    추리소설이라 생각하고 봐서 더 그랬나봐요. ㅎㅎ
    여성심리 묘사가 추리소설에서는 어떻게 이뤄지는지 궁금하네요.
    전 벽장속에서 나오기 부분이 끌립니다. ^^

    • 아키라주니어 2010.07.24 16:32 신고 address edit & del

      추리소설이라는 장르가 구조와 형식에 큰 비중을 둔 장르이긴 하지만 사건이 해결되기 직전까지 심리적 갈등 또한 주목할만하기도 하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여성심리는 미묘한 변화가 많다는 이유로 잘 어울리기도 하는 것 같아요.

      이 책이 그런 심리적 특성을 잘다루고 있기에 제목 역시 그런 부면을 강조해서 지은 것 같아요. ^^

      피곤하시겠어요. 주말에는 푹 쉬세요오~ ^^

  2. 사라뽀 2010.07.24 14:28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심리~!! 재밌을 것 같은데요!!
    전... 문체를 많~이 따지는 사람...이라서 어떤 장르소설은 읽기 버거울 때도 있거든요.. ^^ 체크해 놔야겠네요. ^^

    • 아키라주니어 2010.07.24 16:35 신고 address edit & del

      아무래도 장르소설의 문장은 좀 더 간결하고 단순화된 경향이 있지요. 번역소설의 경우는 작가의 감성을 전달하기 더 어려운 부분도 있을테구요.

      상대적인 의미로 이 책은 훨씬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읽혔던 것 같아요. ^^

  3. rinda 2010.07.25 23:09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번역이 잘 된 글을 만나면 기쁜 반면, 그렇지 않은 책은 그냥 책을 덮고 싶어지죠.
    심리를 잘 표현한 추리소설이라니 무척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

    • 아키라주니어 2010.07.26 00:12 신고 address edit & del

      저도 이해하기 쉽지 않게 번역된 문장들을 보면 답답해져요. ^^;

      분량도 부담없어서 좋아요. 하핫. 린다님도 편안한 밤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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