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환상문학 단편선 _ 반갑다

한국 환상문학 단편선 (2008)

 

글쓴이 : 배명훈 외 9명

출판사 : 황금가지

 

 

미소녀 대통령 - 김이환

크레바스 보험사 - 김주영

마산 앞바다 - 정소연

문신 - 박애진

윌리엄 준 씨의 보고서 - 백서현

서로 가다 - 이수현

할머니 나무 - 은 림

초록연필 - 배명훈

콘도르 날개 - 곽재식

몽중몽 - 김보영

 

열 명의 작가들에 의한 열 편의 단편소설을 실어놓은 단편집.

삼백여 페이지의 부담이 적은 분량으로 열 편의 각기 다른 이야기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은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하는 것을 가능케하지만 흔히 판타지문학, 혹은 환상문학이라고 부르는 특정 장르를 다룬 글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는 가볍지만은 않을 듯 하다.

 

요즘에야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서 다양한 글들이 발표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여전히 인쇄된 책의 형태로 환상문학을 다루는 글을 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더불어 환상문학을 지칭할 때 서점이나 책 대여점에 즐비하게 꽂혀있는 판타지 소설을 쉽게 떠올리게 되는 현실은 더욱 환상문학의 입지가 좁혀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물론 흔하디흔한 판타지소설 또한 환상문학이라는 장르가 포용하고 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도 좋아하고 드물지만 괜찮은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는 작가들도 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글들이 대량으로 쏟아져나오면서 환상문학에 대한 인식 자체가 좁혀져 왔음을 아쉽게 생각한다. 그런 현상은 환상문학이 가지는 가능성을 무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에 안타까울수 밖에 없었다. 좀 더 풍부한 상상력과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장르임에도 '검과 마법'에 갇혀 스스로를 제한해온 것이 사실이다. 뭐, 팔리는 글이 그런 글이었기 때문이라는 현실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이와같은 단편집이 출판된 것은 무척 환영할만한 일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읽힐지, 그래서 기존의 고정된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될지는 앞으로 더 두고봐야 알 일이지만 그래도 독자들에게 그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발전적인 모습으로 비춰진다. 내년에 3권이 나오고 또 그 다음해, 그 다음해에도 꾸준하게 풍부한 상상력을 뽐내는 작가들의 글들이 나와준다면 훨씬 풍요로운 독서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덧 : 같은 라인이라고 착각했던 책이 동일한 제목의 전혀 다른 라인업을 구성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어째 출판사가 다르더니......그래도 다수의 출판사가 이런 글에 대한 관심이 있음을 확인하게 된 것이 다행이라고 여겨야하나.)

 

 

미소녀 대통령

- 책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평행우주' 이론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문근영', '다코타 패닝', '엠마 왓슨' 과 같은 미소녀들이 각국의 대통령 직을 맡고 있다는 등의 설정과 이야기는 나름 흥미를 자극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점에 있어서는 좋았다고 말하긴 어렵다. 몇 몇 문장들은 설정 상의 충돌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그런 이유는 감성적으로 손 가는대로 글을 썼기 때문이다. 마치 습관적으로 관용어구를 사용하듯 쓰는 문장은 이해하기 쉽긴하나 자칫 남발하게되면 문장의 질이 떨어져보이고 미처 살피지 못한 다른 문장과 충돌을 일으키기도 하니 주의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더불어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데 있어서 알려지지 않은 정보와 작가의 의도하는 방향을 직접 서술하듯 나열하고 있다. 그런 방법은 독자 스스로 상상할 수 있는 몫까지 침해하여 지루하게도 느껴지고 이 글의 경우 성급히 마무리를 지어버리는 느낌도 받게된다. 몇가지 에피소드를 더 첨가하여 좀 더 이야기를 끌어갔으면 좋았을 듯 싶다.

 

 

크레바스 보험사

- 깔끔하다못해 기능적으로 보이는 문장과 재미있는 상상력의 결합이 괜찮은 느낌이다. 실린 단편들 중에서 무난한 느낌의 작품. 실제로 이런 보험사가 있다면 가입하고 싶기도 하지만 보험료가 너무 쎄서 패스다. 후훗

 

 

마산 앞바다

- 마산 앞바다의 림보가 주는 느낌마냥 끈적이고 무겁게 잠기는 문장은 좋아보인다. 하지만 읽을 당시 이런 기분에 취해있는 것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괜찮은 글이나 읽는 타이밍이 안좋았다고 해야하나. 허헛

 

 

문신

- 마치 작가의 자전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는 듯하다. 아니, 작가 개인의 모습이라기보단 '작가'라는 타이틀을 걸고 있는 모든 이에게 해당되려나. 문신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단 여행기를 쓰는 주인공의 모습이 더 뚜렷하다.

 

 

윌리엄 준 씨의 보고서

- 이 글을 읽는 동안 번뜩이며 떠오르는 영화가 있었다. '존 카펜터'가 감독한 '매드니스'.

물론 본질은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설정 상에서 유사한 점들이 많아 읽는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재미있게 읽었다.

 

 

서로 가다

- 환상문학의 흥미를 극대화시키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현실적인 요소를 가미하는 것이다. 그것이 역사적 사실일 경우 그 효과는 더 좋아진다. 환상문학의 묘미 중 하나가 환상과 현실이 상충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모순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13세기의 아시아를 배경으로 이상향을 쫓는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역사적으로 실존하는 배경을 차용함으로 이야기의 진지함과 흥미를 잘 구사한 듯 싶다. 다만 전반적인 이야기의 흐름은 왠지 익숙한 것이어서 상상력의 참신한 맛을 즐기기엔 부족하다. 글이 안좋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의도의 방향 자체가 다른 것이다.

 

 

할머니 나무

- 기묘한 상상력을 서정적으로 풀어낸 것이 꽤 좋은 느낌이다. 문장이 전달하는 느낌도 따뜻하고 안정적이다. 개인적인 판단으로 단편집에 포함된 글 가운데 돋보이는 글 중 하나.

 

 

초록연필

- 이 글이 보여주는 내러티브는 매우 참신하게 느껴진다. 상상력 자체만으론 발군의 모습을 보인다. 좋은 문장을 원한다면 다른 작품에서 찾는 것이 더 좋을 듯 싶지만 전달하는 바에 충실한 문장들은 부족함이 느껴지진 않았다. 이 작가의 장편을 빨리 봐야 할텐데.

 

 

콘도르 날개

- 이야기도 흥미진진하지만 작가가 사용하는 어휘에 더 관심이 갔다. 8-90년대 익숙히 들어봤을법한 이름들을 자주 인용한 것은 글 내에서 중요한 소재로 다뤄지는 B급 영화와의 연계성을 보이기도 하지만 독자적으로 향수를 자극하는 느낌도 좋다. 물론 공감할 수 있는 독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지만.

 

 

몽중몽

- 몽환적인 설정과 내러티브는 인상적이지만 집중해서 잘 따라가야 한다. 상황전환이 급진적이어서 저 멀리 도망가는 이야기를 따라잡지 못할 수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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