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 탐정록 (2009)
글쓴이 : 한동진
출판사 : 학산문화사
21세기에 들어와서 문화 전반에서 보여지는 몇 몇 특징 중 하나 중엔 일제강점기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법이 있었다. 단순히 치욕스런 역사적 사실으로 보는 것이 아닌, 외부문물을 받아들인 개화기로써 문화적인 변화와 특성에 시선을 맞춘 것이었다. 그래서 당시의 시대적 특성을 반영한 영화 및 소설들이 다수 등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 역시 그런 시도 가운데 하나로 일제시대 경성을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이다. 글쓴이가 남긴 후기를 보노라면 고전적인 트릭과 추리를 글 안에 담기 위해선 과거로의 회귀가 필요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의 경성. 이 곳에서 사설 탐정으로 활약하는 설홍주가 있다. 이미 여러차례 난해한 사건을 해결하여 명성을 쌓았고 경찰 조차도 그에게는 협력을 아끼지 않는다.
항상 자신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두뇌회전을 필요로하는 사건을 쫓으며 살아가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며 화자로 등장하는 인물은 중국인 한의사 왕도손.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캐릭터로 대표되는 그의 눈을 통해 설홍주의 활약을 지켜보게되는 것이 본 책의 내용이다.
설홍주? 왕도손? 아무리 지금 시대와는 다른 배경을 갖고 있다곤 하지만 주인공치곤 어색해 보이는 이름이다. 작가의 작명 센스를 탓할 것인가?
추리소설을 좀 봤다는 독자라면 쉽게 짐작할 수 있으리라. 맞다. 셜록 홈즈와 왓슨을 한국식으로 변환한 것이 바로 저 이름이다. 처음엔 허탈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지만 단순히 유치한 감상으로 치부할 것은 아니었다. 생각보다 입에 착착 감기는 이름이랄까? 독특한 느낌의 작명이 오히려 득이 된 결과인 듯하다. 그리고 이름 뿐만 아니라 캐릭터의 특성을 보더라도 노골적으로 닮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쉽게 생각하면 그냥 셜록 홈즈의 한국식 리메이크라도 해도 그리 어색하진 않다. 하지만 이것을 그냥 가볍게 흘려보내기엔 설정의 궁합이 괜찮은 느낌이다.
분명 외향적인 특성에서 유사한 점을 많이 찾을 수 있지만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와 한동진의 설홍주는 유사한 시기의 다른 배경을 갖고 있음으로 차별화를 이루고 있다.
작품 설정 상 두 인물의 시대는 시간 차가 크지 않다. 하지만 한 사람은 전세계를 호령하는 제국의 국민으로, 한 사람은 나라를 강제로 빼앗긴 국민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크나큰 차이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런 배경을 통해서 유사해보이는 특성들이 다르게 비춰보이게끔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본 책 뒷 편에 실린 평론에도 언급되어 있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도 느낀 바가 있고 의견에 동의하기에 사설로 풀어놓은 얘기이다)
사실 보여지는 트릭이나 구조적인 면에서 참신함과 뛰어남을 보여주는 글은 아니지만 무난함 속에서 앞서 언급한 특성들이 매력적으로 받아들여 질 수 있을만 하다.
5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생소한 작가의 이름만큼이나 설익은 느낌을 준다.
뭐, 글의 질이 떨어진다는 의미가 아닌 독특한 매력의 캐릭터와 책 속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시대적 배경이 잘 어우러져 하나의 독자적인 세계관을 형성하기엔 아직 미완성처럼 여겨진다는 것. 각 단편의 이야기와 글은 충분히 즐길만한 가치가 있지만 장편이 아닌 단편으로 차곡차곡 쌓고 있는 것은 깊지못한 작가의 내공을 보여주면서 기획의 신중함을 엿볼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작가가 후기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후속 작품이 기대되고 요구되기도 하니 발전 가능성은 충분해 보이기도 하다.
한국형 셜록 홈즈의 활약을 다시 한 번 기대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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