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형 찌질남 성공기
보는 것 2009. 5. 1. 02:38
전차남 (2005, 11화)
★★★★ |
전차남 - 또 하나의 최종회 Special (2005)
★★★★ |
전차남 Deluxe 최후의 성전 (2006)
★★★ |
감독 : 타케우치 히데키
각본 : 무토 쇼고
몇 해전 오타쿠의 사랑이야기가 대중의 관심을 끌었던 일이 있었다.
인터넷 소설로 급격히 인기를 얻은 그 이야기는 영화로도 제작되기에 이르렀고 비슷한 시기에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인기를 끌었다. 실제 2ch 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소재로 극화시켰다고 하는데 사실 여부를 떠나서 흥미로운 이야기이긴 했다.
영화는 몇 해전에 보긴 했지만 드라마는 뒤늦게 접하게 되었다. 영화를 통해서 기본적인 흐름은 이미 알고 있으니 기대를 안했는지도. 제작진이 바뀐다해도 한 번 즐긴 내용을 다시, 그것도 몇 배나 긴 시간을 투자해서 본다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접하고나선 내 짐작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좀 풍성해진 이야기와 유머, 잘생긴 오타쿠가 아닌(영화) 정말 오타쿠스러운 외모의 주인공, 그리고 세차례에 걸쳐 완성된 전체적인 설정은 전혀 새로운 느낌을 느낄 수 있었던 주된 요인이었다.
흔히 전차남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은 기본적으로 상식선에서 기대할 수 없는 관계에 기초하고 있다. 연애하곤 전혀 인연이 없을 듯한 오타쿠와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여겨지는 청순한 이미지의 여성과의 연애는 말 그대로 픽션이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단순히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어울리지 않는 커플들(외모적인 기준에서)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외모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사람 자체의 성향이 관여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오타쿠에 대해서 편견은 없다. 아니 오히려 그만한 집중력을 보일 수 있는 것이라면 천재와 무엇이 다를까 싶기도 하다. 하다못해 '갈릴레오'의 유카와 선생도 '과학 오타쿠'라 불리우지 않나?
오타쿠가 주변 사람들로부터 박해(?)받는 이유는 결여된 사회성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무엇 하나에 집중되어버린 그들에게 있어서 타인에 대해 할애할 시간은 없는 것이겠지. 좋아하는 장르에 집중하면서도 주변 인간관계에까지 모자름이 없다면 과연 타인에게 거부감을 느끼게 될 것인지 의문스럽다. 하나의 집중을 통해서 타인과 교류할 방법도 모르고, 패션도 모르며,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열어야 할지도 모르는 이들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단체의 구성원이라는 개념을 실천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당연히 다른 구성원들에게 배척당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런 오타쿠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주고 있는 것이 이 작품이다.
마치 외계인처럼 취급당하는 그들 역시 자신들이 원하는 목적 외에 감정으로 인해 흔들릴 수 있으며 일반인들과 똑같은 고민을 안고 사는 문제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무조건 벽을 쌓고 볼 일 이라는 태도가 아닌 좀 더 열린 마음가짐을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
뭐, 이런 이야기들은 어떤 매체로든 접한 상황이라면 쉽게 느낄 수 있는 것이니 긴 말은 생략하고....
드라마로 제작된 이 이야기가 다른 매체로 보여진 이야기와 차별화될 수 있는 것은 긴 시간을 투자해서 좀 더 많은 것을 보여주는 것에 있다. 11화로 이루어진 드라마 본 편에서도 이미 영화와는 다른 독특한 상황들을 보여주었지만 이후 2편의 스페셜 이야기를 통해서 좀 더 풍성하고 충실한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것에 의의가 있다고 본다.
그 가운데 드라마 본편과 같은 해에 방영된 스페셜 판은 그 완성도가 꽤나 높다라고 보여진다.
11화로 방영된 드라마의 동일한 흐름을 가지면서도 넷 상에서 커뮤니티를 이루는 다른 이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새로운 흥미를 자극함과 동시에 기존 이야기를 더욱 튼튼하게 다져주는 역할을 잘 해내주었다. 물론 보는 이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었겠지만.
그에 반해 다음 해에 보여졌던 전차남 프로포즈 에피소드는 약간 김이 빠진 듯한 느낌이다. 물론 전차남이라는 캐릭터를 연애에서부터 결혼까지 하나의 흐름을 완성하는 것은 좋지만 구조적으로 이전 작품들과 다른 점을 찾기가 어려워 약간 실망하기도 했다. 그냥 전차남에게 주어진 상황이 변하고 그에따라 갈등이 되는 포인트도 달라진 것 외에는 크게 주목할만한 점은 없었다 보여진다.
전차남으로 등장한 이토 아츠시는 오타쿠 이미지가 잘 어울렸던 배우였다.
영화에서 연기했던 야마다 타카유키의 고급스런 오타쿠와는 분명 많이 다른 이미지였고 오히려 설득력 있는 모습이었다. 다만 과연 저런 인간이 실제할까? 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과장된 연기에 짜증이 날 것 같은 것도 사실이다. 오타쿠의 이미지를 극대화한 모습도 드라마틱하긴 하지만 오히려 그런 연기가 감상을 방해한 꼴이 되었으니 참. 뿐만 아니라 에르메스 또한 극화한 캐릭터로 실제로 있을 법한 모습이 아닌 인형과도 같은 느낌이 강하다. 분명 자기 의사와 감정을 표출하긴 하지만 그건 이야기 설정 상의 필연적인 것으로만 존재할 뿐, 감정이 다양하지 않아서 현실감이 없는 듯하다. 더불어 그런 모습을 통해 의도적으로 오타쿠 캐릭터를 더 강조하는 느낌도 있으니 픽션은 그냥 픽션으로 즐겨야 할지도 모르겠다. (모티브는 실제했던 이야기를 다뤘다하더라도.)
드라마로 제작된 전차남 이야기는 전차남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다룰 수 있는 이야기를 다 쏟아내었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은 분명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전차남이 보여준 솔직함에 대한 자세와 그가 접촉했던 커뮤니티의 모습이 이 드라마를 상징할 수 있는 특징이긴 하지만 그냥 별 생각없이 즐기기에도 충분하리라 보여진다.
혹시 전차남을 통해 기대와 희망을 가지려고 한다면 그만둬라.
극히 저조한 가능성에 기대하느니 자신의 시간을 조금 희생해서라도 여성과 그들의 취향을 연구하는 편이 더 좋을 듯 하다. 그냥 포기했다면 할 말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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