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악마를 보았다 - 누구나 보았다
보는 것 2010. 8. 20. 03:18
악마를 보았다 (2010)
김지운
박훈정
이병헌/최민식
이 영화를 보기위해 극장에 들어서는 관객들은 서로 비슷한 생각을 했을것이라 생각이든다. 으례 보아왔던 '범죄스릴러 영화' 를 기대했을 것이며 사전에 접한 시놉시스를 근거로 통쾌한 복수극을 떠올렸을 것이다. 문득 이 영화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었다는 뉴스를 얼핏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공포영화도 아닌데 범죄스릴러가 해봤자 뭘...' 이라는 생각으로 덮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작된 영화는 관객들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그것도 아주 제대로. 그로인한 관객들의 반응은 상반되게 갈렸다. 얼얼한 뒤통수를 문지르면서도 기대와 다른 무언가를 발견한 느낌에 만족하는 관객들이 있는가하면, 그 기대에 어긋났다는 이유로 벌컥 화를 내는 관객들도 있었다. 당연한 것이지만 어느 쪽이 답이라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어느 쪽이 되었든 이 영화, 관객들의 반응을 이끌어낸 점에 대해선 확실히 성공했다라고 말할 수 있다.
국정원 경호요원인 수현(이병헌 분)은 약혼녀가 잔인하게 살해당하자 범인에 대한 복수를 결심한다. 그리고 결국 경철(최민식 분)이 범인임을 알게된 수현은 그를 처절하게 응징하기 시작하는데......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갖고 영화를 관람했다. 사실 영화가 보여주는 이야기는 새로울 것이 없었다. '복수' 를 다룬 테마는 TV 드라마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을 정도로 흔하다. 더불어 주인공의 복수 행로에 공감할 수 있도록 범죄의 잔혹함을 드러낸 작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개봉 이전에 드러난 사실만으론 이 영화의 차별성을 크게 기대하긴 어려웠다. 비록 수현의 복수행로가 호기심을 일게 만들었고(복수를 위해 놓아준다는 상식 밖의 설정), 제목과 심의등급 문제가 주의를 일깨웠지만 뭔가 다른 것을 기대하게 만들진 못했다.
하지만 정작 영화관람이 시작되자 내가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낯설음이었다. 익숙해진 동일 장르의 영화와는 다른 낯선 영화였다. 도대체 왜?
지금 이 영화의 이슈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키워드는 '잔혹함' 이다. 전혀는 아니지만 기대할 수 없었던 수준의 잔혹함은 관객들에게 상당한 부담감을 안겨줬고 불편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공포영화를 좋아하는터라 잔혹한 장면에 내심 익숙하다고 생각해온 나역시 불편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던 장면들은 도대체 왜? 라는 의문을 낳기에 이르렀다.
이 영화는 적지않은 자본을 투자한 상업영화이다. '범죄 스릴러' 라는 장르적 특성을 지닌 영화로써 적절한 범죄장면을 포함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하지만 관객에게 부담을 줄만한 장면의 빈번한 노출은 지양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이자 상식이었다. 보통 잔혹한 장면이 연출되어도 결정적인 장면에선 암시를 주는 선에서 멈추거나, 카메라 앵글 밖으로 밀어내거나, 점프컷을 이용하곤 했었다. 거대자본이 투자된 상업영화로써 당연한 것이리라. 그런 상업영화의 입장은 동일 장르의 다른 영화를 보아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의도적으로 잔혹한 장면들을 카메라 안에 담았다. 더욱 과도하고 더욱 빈번하게 말이다. 낯설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의문이 들 수 밖에 없었다.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들면서까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나?
이 영화의 특별한 잔혹성은 제목과 관련하여 많이 논의되고 있는 듯하다. 악마같은 인물인 경철은 물론이거니와 수현 역시 복수의 방법론과 관련되어 악마로 취급되기도 하는 듯하다. 1 그리고 그런 수현에게 감화된 관객들은 처절한 범죄행위의 묘사에 분노를 느끼며 스크린 밖에서의 악마를 발견하기도 하는 듯하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관객이 받아들이는 것에 따라 각자의 답을 완성하고 있으리라.
다만, 개인적인 생각을 좀 더 첨부하자면 잔혹한 장면으로 완성된 악마성은 극 중 캐릭터에겐 아무 의미가 없다. 잔혹한 장면이 영향을 미치는 것은 관객 뿐이다. 영화 상에서 잔혹한 장면이 있든 없든 캐릭터의 상황이나 감정은 달라질 것이 없다. 그러니 극 중에서 누가 악마이고 누구의 시점에서 본 것인지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보여진다. 앞서 말했듯이 잔혹한 장면의 영향을 받는 것은 관객이다. 그리고 각자의 느끼는 바에따라 악마의 대상을 만들어갔을 것이다. 대상이 경철이든, 수현이든, 아니면 내 안의 무엇이든간에 말이다. 그렇게 관객은 감독의 의도대로 '악마를 보았다'.
각자 악마의 정의가 무엇일지 모르지만 악마를 보는 경험은 결코 유쾌하진 않았다.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상황과 소재를 사용하여 현실적 감각을 입힌 잔혹성은 마주대하기 어려울 정도로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특히 여성들은 더욱 힘들었을 것이라 보여진다. 영화 속 범죄의 피해자가 대부분 여성들이기 때문이다. (남자 피해자도 있지만 묘하게도 범죄행위의 과정이 생략되거나 카메라 앵글을 벗어남으로 그들의 고통을 공감하기엔 미약하다) 납치되어 신체훼손을 당하는 것도 여성이었고, 아침 밥대신 누군가의 위 속으로 들어가야할 처지에 놓인 것도 여성이었다. 게다가 영화는 그런 고통스런 장면을 구체적으로 늘어놓고 있었다. 남자가 보기에도 충분히 고통스러울 장면들이 현실적으로 남자보다 더 범죄에 노출되어 있는 여성들에겐 얼마나 고통스러울 것인지 상상도 되지않는다. 특히나 그런 범죄에 노출된 경험이 있다면 이 영화는 더이상 영화일 수 없을 것이다. 2범죄에대한 경각심이라면 뉴스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느낄 수 있다. 평상 시 범죄에 대한 두려움에 특히 민감하신 여성이라면 영화관람을 포기하시라고 권하고 싶다. 내 동생에게도 절대! 보지말라고 당부해두었다. 영화를 즐기는 것보다 고통이 더 클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이토록 관객을 흔들어놓은 이 영화의 완성도를 보자면 꽤 괜찮은 편이다. 관객들의 반응은 차치하고서라도 일반적일 수도 있는 이야기와 이 영화만의 시각적 스타일은 잘 버무려졌다고 보아진다. 뭐, 이점은 감독 고유의 특성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잔혹함이라는 특성이 가세하여 예상치 못한 것을 낳았다고 보여진다.
게다가 거의 모든 이야기가 두 주인공에 의해서 끌려가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이 영화에서 두 배우의 역할은 가히 대단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병헌에 대한 믿음은 없는 편이지만 최민식과 함께 투 톱의 역할을 잘 치뤄냈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비중은 적지만 자칫 늘어질 수도 있는 이야기의 흐름을 적재적소에서 자극시켜주는 조연들 역시 괜찮았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영화 플레이타임을 모르고 관람하였는데 시간을 인식할 수 있었던 것은 영화가 끝난 후였다. 개인적으론 긴 시간에 비해 지루할 여지는 없었던 영화라고 생각되어진다. 워낙 이러저러한 자극에 휘말리다보니. 뭐.
올 여름, 인셉션과 함께 가장 큰 화두를 낳게 될 영화가 아닐런지싶다.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잘 만든 영화이며 예상치 못했지만 감독의 특성 또한 잘 반영된 영화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다만, 이러저러한 이유로인해 나중에라도 두 번 보게될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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