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드 캔디 - 폭력은 공평하다


하드 캔디 Hard Candy[각주:1] (2005)

데이빗 슬레이드
브라이언 넬슨
패트릭 윌슨/엘렌 페이지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음)
샤를 페로의 '빨간 모자' 에게서 모티브를 가져왔나?
그리고 덫 위에 미끼처럼 서있는 소녀는 뭐지? 함정처럼 보이는데.

늑대와 소녀, 덫 위의 미끼. 포스터를 통해 이와같은 키워드를 떠올릴 수 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소아성애'를 소재로 다루면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뒤집어버림으로써 키워드와의 연결성을 입증하고 있다. 즉, 포스터에서 읽어낸 키워드를 통해서 이 영화의 주요한 특성을 미리 알 수 있다는 것.



정적인 심리스릴러
그렇다. 이 영화는 온라인 채팅을 통해서 만난 남자와 소녀에 대한 이야기다. '소아성애자'로 보이는 한 남자와 채팅을 통해 그 남자에게 꾀어 만남을 결심한 한 소녀. 둘의 관계가 뻔해보이지만 그런 생각이 뒤집히는데 필요한 시간은 고작 20분이었다. 분명 반전이 있는 영화이지만 반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영화는 아니다. 언급한 것처럼 20분만에 반전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이 영화가 반전영화는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오히려 이 영화는 반전이 일어나기 전과 그 후의 심리변화와 진행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반전은 단순히 전환의 계기로써 활용되고 있을 뿐이다.[각주:2]


언제부턴가 스릴러 영화라면 으례 반전을 기대하는 관객의 기대를 외면한 이 영화가 장르적 특성을 드러내는 부분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남자의 집이라는 제한적인 공간과 더불어 상황의 변화도 많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관객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대사와 표정,색과 같은 정적인 것들 뿐이다. 유독 클로즈 업도 많은 편이고,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것은 거의 대사에 의지하고 있다. 앞서 이 영화의 초점이 등장인물의 심리적 변화와 진행에 맞춰져 있다고 언급했는데, 이런 특성들이 대사와 표정을 통해서 드러나고 있다. 이를테면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서로 심리적 약점을 찾아 공격하려 하거나 상황전개로인해 심리적으로 변화하는 모습들이 대사와 표정 그리고 몸짓으로 디테일하게 표현되고 있고 제한된 공간에 색의 변화를 주어 심리적, 감성적 변화를 표현하기도 하였다.[각주:3] 더불어 2회 이상 영화를 관람하게 된다면 대사와 표정이 또 다른 느낌으로 전해지는 것을 경험할 수도 있다.[각주:4]
 


폭력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이 영화의 테마는 복수이다. 그런데 복수의 주체인 소녀의 정체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추정이야 가능하겠지만 영화 상에서 명확하게 '난 누구요~'라고 말해주지 않으니 확정짓기 힘들다. 게다가 어린 나이에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기획력과 행동력은 분명 일반적인 것이 아니다. 본인 스스로도 자신을 정신과 의사에게 보인다면 다섯 중 네 명은 미쳤다고 결론지을 것이라 말하고 있으니. 그처럼 불분명한 정체로인해 복수에 대한 타당성 마져 흐려보일 수 있다.


하지만 '소아성애'라는 문제와 맞물려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뚜렷한 입장은 있었다. 특수한 형태의 폭력을 행한 남자와 직접적인 피해를 입진 않았어도 복수를 하고자하는 소녀가 존재하고 있다. 실제로 소녀 자신은 미수에 그쳤지만 성폭행의 피해자가 될 뻔하기도 했다.[각주:5] 그렇게 특정범죄와 관련되어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히 구분될 수 있지만 이 영화는 다시 한 번 그 관계를 뒤집어버렸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에 혼란이 오게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혼란은 폭력에 대한 의문을 가져왔다.


영화는 피해자가 되어버린 남자의 입을 빌어 폭력의 정당성에 의문을 던지고 있었다. 소녀가 행한 폭력에 대한 죄책감이 평생 따라다닐거라면서 소녀로 하여금 그만둘 것을 종용했다. 하지만 소녀는 무시했다. 그만큼 증오가 컸으리라. 남자든 소녀든 각자의 입장을 밝히고 서로가 벌인 일에 대한 의문을 제시했지만 그것이 유효한 대상은 관객 뿐이었다. 극 중 캐릭터들은 결정적인 변화 없이 묵묵히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행했을 뿐이었다. 영화는 답을 주지 않았다. 소녀는 전혀 기뻐보이지 않았다.



'소아성애'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폭력에 있어서 주체와 대상은 전혀 제한이 없다는 점이 인상깊이 남았다. 어른이든 아이든, 남자든 여자든간에 누구나 폭력의 주체가 될 수 있었고 대상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을 뿐이었다.
단순히 픽션일 뿐이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었다. 지금 뉴스를 보더라도 이 영화에서 다룬 것과 유사한 형태의 폭력 뿐만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서 자행되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들을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증오할만한 일들이 현실적으로 자행되고 있다. 우리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14살짜리가 분노에 치를 떠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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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드캔디는 어린 소녀를 지칭하는 속어라고 한단다. [본문으로]
  2. 심리의 변화과정은 소녀가 남자로부터 증거를 찾기위해 노력하는 것에서부터 드러난다. 자백을 유도하기로하면서 스스로 죄를 인정하게끔 심리적 공격을 진행하는데, 관객의 입장에선 남자의 죄 자체를 인정해야 하는지도 의심스러운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본문으로]
  3. 미술에 대한 조예가 깊지 못한 탓에 세부적인 확인이 불가능하였으나 나같은 범인도 알아볼 수 있을만큼 굵직한 변화를 통해서 단편적인 이해는 할 수 있었다. [본문으로]
  4. 초반 까페에서의 장면을 다시 보게된다면 소녀의 대사와 표정이 달리 느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본문으로]
  5. 폭행의 실행여부를 떠나서 소녀 스스로 자신을 집으로 유인한 사실과 술을 먹인 사실을 통해 폭행을 입증하고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