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다큐멘터리 3일 - 문전성시, 못골시장에서의 3일


문.전.성.시 - 못골시장에서의 3일


어렸을 때 재래시장은 놀이터였다.
구경거리가 산재해있고, 먹을거리가 넘쳐났다. 물론 넘쳐나는 먹을거리가 다 내 뱃속으로 들어왔던 것은 아니다. 그래도 몇 백원어치의 떡볶이만으로도 충분히 배를 채우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런 재래시장이 21세기에 들어와서는 급격히 하락세를 겪게 되었다. 나 역시 재래시장을 마지막으로 찾아가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이다. 물론 재래시장 현대화사업을 통해 부흥을 꾀하려는 노력도 있었지만 대형마트에 밀리는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장사를 업으로 삼은 분들이 장사를 하지 못하고 피켓을 들고 일어나야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대부분의 재래시장이 그와같은 현실을 겪고 있을 때, 수원의 못골 종합시장은 오히려 작년보다 손님이 더 늘어났다고 한다. 의아했지만 정말 화면 속의 시장은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시장의 모습이랄까. 하지만 기억 속의 시장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시대에 맞춰가는 모습이었던걸까?


합창단, 라디오 프로그램, 밴드부.
이상은 시장 내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들이다. 흔히 알고 있는 시장이라는 개념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시장 내의 이 분들은 장사와 함께 부수적인 이와같은 활동을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분명 외부의 압력에 의해 스스로가 단결할 필요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저항의 의미로 결합을 다져온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세상이 변화하고 수십 년간 터전이었던 시장이 와해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가장 큰 문제는 본인 스스로가 무너질 가능성이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변화하는 세상과 외부의 압력에 저항하기에 앞서 스스로를 다잡을 수 있을만한 계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게 장사 이외의 방법을 통해서 연결된 끈은 자신을 지키고 더 나아가 터전을 지킬 수 있도록 한 것은 아닐까.


그렇게 다잡혀진 마음가짐은 시장 안에서 세대를 뛰어넘기도 했다. 3대째 이어오는 떡집, 아버지의 장사를 물려받기 위해 대학도 농대로 진학했다는 아들이 존재하는 시장이었다. 부모입장에선 자식에게 시키고 싶지 않은 일일 수도 있고, 젊은이들은 기피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장 내의 가족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개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함께' 라는 단어를 몸소 실천하고 계시는 분들만 그곳에 계셨다. 시장의 주체는 손님이 아니었다.



힘을 잃어가는 다른 시장에 비해 남다른 결과를 낳은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생존본능에 이끌려 변화를 갖게된 것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많은 것을 지킬 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지켜가겠지. 방송의 계기가 벤치마킹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어떨까 싶다. 정(情)은 보너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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