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故 최고은 작가의 명복을 바랍니다

어제, 가슴아픈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시나리오 작가가 생활고를 이겨내지 못하고 요절했다는 뉴스였습니다.
그것도 남은 밥 좀 달라는 유언아닌 유언을 남기고서.


전 이 분을 모릅니다. 이 분이 학창시절에 만들었다는 단편영화도 본 적 없습니다.
하지만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남 일 같지 않았습니다.
제 스스로 이 분과 비슷한 길을 가려한 적 있었고, 주위에 같은 문제로 고통받았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일에 대한 기사를 꼼꼼히 읽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에대한 대중들의 반응도 꼼꼼히 보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최고은 작가의 죽음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내주었지만 놀랍게도 상당 수의 사람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더군요. 그 가운데 으례 하는 이야기는 왜 일을 하지 않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굶어죽을 때까지 왜 일을 하지 않았는냐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분은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어구까지 인용하시더군요. 상당 수의 사람들이 시급은 얼마, 월급은 얼마, 연봉은 얼마 라는 식의 수치화된 활동이 아닌 것은 일로 여기지 않는 듯 보였습니다.


이에대해 분명히 언급할 수 있는 것은 최고은 작가는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빗대어 설명하자면 악덕사장 밑에서 임금도 제대로 못받고 일을 한 것이긴 하지만. 그녀 스스로 '5타석 무안타' 라는 글을 남긴 것으로 보아 5편의 시나리오가 제작사에게 팔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단순히 시나리오 작성만으로는 타석에 섰다고 표현할 수 없습니다. 제작사에게 시나리오가 팔렸을 경우에만 유효의 수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일반 소설가가 출판에 성공한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영화계 관행' 이라는 이름 하에 영화 제작이 안되어 계약금도 제대로 못받고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소설가가 출판만되면 최소한의 계약금은 보장받을 수 있는 것과는 다르게 말이죠. 게다가 제 값을 받지 못한 시나리오는 영화제작이 될지 어떨지 모른채 그대로 묶여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다른 출판원고는 팔리기 전 여기저기 출판사에 투고할 수 있기라도 하지만 시나리오는 말만 팔린 것이지 제 값을 지불한 것이 아니기에 권리는 권리대로 넘겨주고 작가는 생활고에 시달릴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스타' 라는 수식어를 붙인 작가의 경우에만 높은 가격으로 시나리오를 팔 수 있고 초보나 흥행작을 내지 못한 작가라면 일반 직장인들의 연봉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이 작업은 다작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일 년에 몇 편 씩 팔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그나마 다작이 가능한 소설가도 1년에 1편 이상의 작품을 발표하는 작가는 극히 드뭅니다. 최고은 작가의 경우 단편영화 발표 이후 1년에 한 편 꼴로 시나리오를 팔 수 있었던 상황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제작이 안되었단 관행으로 일은 일대로 하고 제대로된 댓가를 받지 못한 것이지요. (전세계 영화계의 관행이 아닙니다)


푸념같은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만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간 가장 큰 원인은 영화계 구조상의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당한 댓가를 치루지 못하는 관행과 수익 분배의 불균형이 영화계의 인력을 떠나게 만들고 심지어 이와같은 일을 일으킨 것이라 생각됩니다. 제 주위에도 부득이하게 영화계를 떠나 다른 직종에 종사하고 있는 분들이 있으며 가까운 선배 한 분은 젊은 시절을 영화계에서 보내고 결국 한국에서는 절대 영화일 안한다고 선언하시기도 했지요. 이 말에서 느껴지는 뉘앙스처럼 이 분들이 영화에 대한 열정이 식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는 영화일을 하는 것이 여러모로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남아있는 분들 가운데 상당 수는 부업을 고려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최고은 작가 역시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주위에서도 충분히 보아온 사실일터이고 조언도 들었을테죠. 기사 상에서도 연체된 월세가 수 개월, 이전에는 어느 정도 생활이 가능했을겁니다. 팔린 시나리오 계약금의 일부를 받은 돈으로 혹은 우리가 모르는 부업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때는 건강 상의 문제도 크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어느 땐가 생계를 이어가는 것이 불가능해졌을텐데 그 사유는 모릅니다. 본인이나 사실을 알고 있는 지인이 아닌 이상 그 누구도 모릅니다. 그녀가 생계를 이어가지 못하는 상황에 닥친 이유를 말입니다. 혹자가 말하는 건강 상의 이유일수도 있고 자존심의 이유일수도 있습니다. 아니, 자존심이 이유였다고 하더라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녀가 하고싶은 일에 목숨을 건 신념과 노력 등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그런 꿈을 지녔었고 주위에서 그런 꿈을 갖고 사는 사람들을 종종 보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자존심이 이유라고 생각되진 않습니다. 그러기엔 유언이라고 생각지 못했을 그러한 메모를 남기는 것은 너무나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 때문에) 어쨌든 최고은 작가의 사정이 어떠했는지 누구도 모릅니다. 남겨진 것은 안타까운 죽음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애도와 개선뿐이리라 생각됩니다.


공감되지 못할 수는 있습니다. 인정할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유가 비난을 정당화할 수 는 없습니다.
누군가가 우리와 다른 삶을 살았고 기대하고 싶지 않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다르다는 이유가 비난의 근거가 되진 않습니다. 자신 또한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비난받기 이전에 자신을 돌아봄은 어떨지요?
너무나 가슴 아픈 상황이 현실이라는 것에 낙담하고 있습니다.


문득 요즘 자주 언급되는 '보편적 복지' 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故 최고은 작가의 명복을 바랍니다.




추신
: 오늘 저녁 뉴스에서 이 사건을 다루는 것을 보았습니다. 객관적이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생각보다 뉴스의 비중은 얕아보였습니다. SBS 8시뉴스에서는 아예 관련 뉴스를 전하지 않았고, KBS와 MBC에서만 다루더군요.(SBS 에서는 이후에 뉴스를 다뤘는지는 확인 안되었습니다) 그나마 뉴스를 다룬 MBC와 KBS에서 조차 다른 뉴스들에 밀려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인간의 기본권에 관한, 무엇보다 비중있게 다뤄야할 뉴스라고 생각되는데 말입니다. 방송국이라 그런가? 하는 근거없는 생각도 떠오르는군요. 긁적. PD수첩같은 프로그램에서 좀 더 심층된 내용으로 다뤄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뭐, 이런 이야기들은 제 주관적인 생각일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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