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남해기황 네오랑가



남해기황 네오랑가 南海奇皇ネオランガ (1998, 48화)

카미야 쥰
아이카와 쇼
WOWOW/ 포니캐논/ 무빅/ 스튜디오 피에로



   균형을 깰 만한 힘이라면 방향성이 없더라도 그 존재만으로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본 작품은 그러한 힘의 여파로 인해 변화하는 것들, 관계의 역학적 특성이라던가 표면화된 내면의 다양성 등을 담아내고 있다.


도쿄 만에 거대한 생물체가 나타났다. 특별히 공격성을 띈 것은 아니지만 규모로 볼 때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피해를 발생하게 될 터였다. 자위대가 막으려하지만 불가능한 상황에서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것 같던 거대 생물체는 세자매에 의해서 제어될 수 있게 되는데......


다르다
시청자의 현실과 차이점을 보이지 않을 작품 속 현실 속에 '랑가'라는 듣도보도 못한 괴생명체가 등장하게 된다. 이 새로운 개체는 작품 속 현존하는 인류와 부득이하게 공존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데, 거대한 크기와 낯설음은 그 자체만으로도 인류에게는 범접하기 힘든 힘으로 변화되어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인류가 처음 가졌던 적개심은 통상적인 무기가 통하지 않음으로 무력함으로 변화되었고, 이후 '랑가'라는 존재가 인류에게 적대적인 행위를 하지 않으며 3명의 여성들이 이를 제어할 수 있음이 밝혀지자 즉각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호기심으로 인해 모여든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들이 표출되어 졌다.


그리고 그렇게 드러난 반응들은 각자의 유토피아관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은 개인의 사회적 위치와 환경에 따라서 소소한 형태를 띄고 있는 것에서부터 국가의 정체성을 전복하려는 시도까지 다양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중심된 인물들의 유토피아관이 서로 충돌하면서 드라마를 형성한다.[각주:1] 이런 특성에 초점을 맞추면서 거대괴수 혹은 로봇이 등장하는 다른 작품들과 차별화를 이루고 있다. 다른 작품들이 정의구현을 위해 애쓰고 있는 것 과는 다르게 갈등과 시선의 초점이 분산되고 힘의 주체인 '랑가' 는 이러한 과정과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한 자극으로만 활용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특성은 문득 '고르고 13' 을 생각나게 하기도 했다.[각주:2] 물론 '지구방위기업 다이가드' 같은 작품도 로봇과 활약 이면의 것에 주목한 작품이긴 하지만 이 작품과는 구조적인 면에서 차이가 있다. 


'고르고 13' 의 경우 구조화된 형식을 반복함으로 고르고의 본질을 변화시킬 필요없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이 가능했지만 '남해기황 네오랑가' 의 경우 연속성 있는 이야기를 이루고 있는터라 후반부에 이르면 '랑가' 와 '허신'[각주:3] 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함으로 앞서 언급한 차별화된 특성에서 벗어나는 경향을 보이는 듯 하다. 하지만 '허신' 의 존재는 이미 자아를 상실하고 인간 욕망의 도구로써 활용되는 것이며 '랑가' 또한 세계관 설정에서 비롯되는 인류 멸망의 가능성을 인간의 선택에 맡김으로 자아실현의 도구 이상의 의미는 부여하지 않고 있다. 어쨌든 드라마라는 것이 인간의 욕망과 갈등을 구현하는 것이 본질인이상 이 작품이 보여주는 드라마 또한 예외일 수는 없다. 다만, 언급했듯이 거대 생명체(혹은 괴수)가 등장하는 작품군에서 이와같은 설정과 특성을 보여주는 것은 매우 드물기 때문에 뚜렷한 차별화를 보이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은 방송형태에서도 특이점을 보인다. 총 48화로 구성된 이 작품은 한 화 당 10여분의 플레이 타임을 보인다. 전체 분량으로 본다면 24화로 구성된 일반 작품들과 다를 바 없지만 이 같은 플레이 타임으로 구성된 사례는 흔치 않다.[각주:4] 이러한 구성은 으례 호흡이 짧게 느껴지는데 하나의 사건을 구성하기 위해 여러 화가 쓰이지만 하나의 화 내에 시청자를 자극하는 최소한의 갈등 구조는 갖추고 있으니 액션 씬이 드문 이 작품의 호기심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평범하게 24화로 이뤄진 구성을 선택할 수 있었겠지만 이 작품과 비교될 다른 작품들과 성향을 달리하고 있는 특성을 고려한 선택으로 보여진다.




낚였다
이러한 다른 점을 갖춘 작품이지만 사실 우연히 이 작품을 접할 때 고려한 점은 흔한 '슈퍼로봇물' 을 선택할 때와 다르지 않았다. 제목은 여타 로봇 아니메의 그것과 유사한 느낌이 있고, 기묘한 생김새지만 거대한(슈퍼로봇과 유사한) 개체가 보였고 더불어 노출 있는 세 여성의 비주얼은 기대하는 것과 유사하다는 판단을 내리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랑가' 와 '허신' 의 대립구조는 기존 로봇 아니메에서 봐오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분명 표면적인 것이지만 다른 로봇 아니메와 유사한 모습을 갖춘 것도 사실이다. 특히 '신세기 에반게리온' 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수 없었던 90년대 후반, '포스트 에바' 라는 호칭으로 불리우는 작품군과의 연계성을 무시할 수도 없는 것이기에 더욱 이 작품의 대중성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각주:5] 하지만 그러한 특성은 시청자를 낚기 위한 것이었던가. 앞서 언급한 특성으로 인해 차별화를 분명히 이뤄내고 그에따라 시청자의 반응도 상반되게 나뉘게 될 법한 작품임은 분명하기에 대중적인 판단으로 접근하면 의외의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었다. 나 역시 동일한 경험을 했고.


양의 탈을 쓴 늑대처럼 그 속에 담긴 독특함으로 취향을 탈 만한 작품이다. 비주얼적으로도 원시적이고 토속적인 요소들이 어떠한 반응을 이끌어낼지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단순히 노출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노출이 잦거나 노골적인 작품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시선을 빼앗길 시청자도 분명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기대하는 것과는 다른 것을 보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만족도는 더욱 높일 수 있었다. 마치 숨겨진 보물을 찾은 것처럼.
아니메를 통한 일상적인 자극에서 벗어나고 싶거나 좀 더 진중한 시선을 즐기고 싶은 사람이라면 좋은 선택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그렇다고 무거움에 눌릴 작품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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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물론 다수의 사람들은 힘의 영향력에 대한 즉흥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 태반이긴 하다. [본문으로]
  2. 고르고 13의 특성은 주인공이지만 사건과 갈등의 주체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 랑가와 유사한 점이 있다. '고르고 13' 의 참고 리뷰. http://akirajr.tistory.com/192 [본문으로]
  3. 랑가 역시 허신과 같은 존재로 고대부터 신격화된 생물체를 말한다. 이해하기 쉬운 사례는 모노노케, '원령공주' 에서의 원령이 흡사하다. [본문으로]
  4. 10여분의 플레이타임을 보이는 작품은 종종 확인할 수 있지만 이만한 분량을 보여주는 작품은 극히 드물다. 혹시 다른 사례가 있는지 아시는 분은 알려주시길. [본문으로]
  5. 실제로 방영 당시 에바와의 비교가 이뤄졌었고 이런 상황은 이 작품의 독자적인 가치를 매기는데 장애물이 되지 않았을까 추정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