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싸우는 사서 - 완성도 높은 구조의 발현



싸우는 사서 戦う司書 The Book of Bantorra (27화 完, 2009)


시노하라 토시야
야마가타 이시오(원작)/오카다 마리
데이비드 프로덕션



'싸우는 사서' 시리즈로 알려져있는 라이트 노벨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원작은 총 10권으로 완결되었고 국내에서도 번역, 출판되었다.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작화는 원작의 삽화를 맡은 마에시마 시게키의 디자인을 그대로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원작을 미리 접했던 독자의 경우 다른 매체로 재가공된 작품을 접하게 되었을 때 원작에 대한 관심이 다른 매체로 확장되거나 혹은 완성도에 대한 우려로 거부감을 느끼게 되는데 후자의 경우 디자인의 유사함을 통해 접근하기 더 용이해지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삽화 디자인의 비중이 다른 소설에 비해 제법 높은 편인 라이트 노벨의 장점 가운데 하나라고 할까나. 원작을 접한 독자들의 감상은 괜찮은 듯 보인다. 개인적으로 원작을 보진 못했다.


이 세계에서의 인간은 죽으면 책이 된다. 그리고 그 책에 살아있을 때의 기억과 경험이 녹아든다. 다른 사람들은 그 책과 접촉을 이루면서 타인의 기억과 경험을 간접 체험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책들을 관리하는 거대한 도서관이 존재한다. 과거를 관장하는 신, '반토라' 에 의해서 설립되었다는 이 도서관은 독립국가로써의 가치와 존재감을 갖고 있을 정도. 그리고 책을 두고 도서관과 대립적 관계를 이루고 있는 단체로 신익교단이 있다. 그들은 인간의 욕망의 발현을 최대의 목표로 두고 역사 속에서 가치있는 책을 빼앗기 위해 도서관의 무장사서들과 싸운다. 이 작품은 거대한 두 단체의 대립과 그 속에 숨겨진 진실을 다루고 있다.




총 27화로 구성된 분량은 다른 작품에 비해 조금 특이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중간 Summary 역할을 하는 에피소드가 있어서 구성 자체는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겠다. 10권의 원작 분량을 생각한다면 2기 제작까지 염두에 둘 수 있을 듯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작품의 선택은 구조적 완성도를 위해 옳은 선택을 한 것으로 보여진다. 원작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나 축약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변형된 결과물은 독자적인 완성도를 충분히 이뤄내고 있었다. 만약 2기까지의 진행을 고려했다면 이야기는 느슨해지고 퍼즐과 같은 구조양식의 완성도는 더 떨어졌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 구조의 특성은 원작의 것을 물려받은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작품이 보여주고 있는 서사는 시간축을 기점으로 하고 있지 않다. 매 화가 진행되면서 보여지는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을 따르고 있지 않다. 짐작컨대 원작 1권의 내용을 2-3화 정도의 분량으로 보여주고 있는 듯한데, 그렇게 보여지는 에피소드의 배치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감춰진 진실이 점진적인 방법으로 드러나게끔 배열되었다. 이러한 구조적 특성은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성이자 차별화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세계관이 표현하고 있는 책의 특성과도 묘하게 맞물리면서 드라마를 생성시키고 있었다. 단순히 독특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 작품의 구조는 그 자체만으로도 괜찮은 완성도를 보이고 있다. 과거의 기억과 경험을 담고 있다는 책의 특성을 살려 매 화마다 플래쉬 백이 자주 연출되는데, 그렇게 등장하는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사실이 조합되어 완성된 형태의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것이 기본 포맷이다. 더불어 에피소드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 캐릭터나 소재 등과 같은 것들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않고 다른 에피소드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독립된 에피소드가 하나의 거대한 흐름을 이루게 만드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이 작품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모든 것은 시간축에 따라 직렬적 결합을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가 거대한 퍼즐의 조각으로써 역할을 이루고 있다는 이야기다. 처음엔 완성된 세계관 속의 구성요소들을 장기말 놓듯이 사용하면서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는 구조인가? 싶다가 퍼즐과 좀 더 닮아있으며 제법 충실하게 결합력을 이루고 있는 모습에 꽤나 마음에 들었다.




이러한 구조적인 특성 외에 이 작품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다른 특성은 캐릭터이다. '하뮤츠 메세타' 라는 캐릭터에 비중이 좀 더 실려있지만 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한 캐릭터의 비중은 서로 큰 차이가 없다. 굳이 분류하자면 이 작품은 캐릭터 중심이 아닌 플롯 중심의 작품이지만 그런 분류가 애매하게 느껴질 정도로 각각의 캐릭터는 개성이 강하고 감상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게다가 계급적 분류도 명확하게 드러나 있어서 이에따른 캐릭터간의 갈등도 꽤나 흥미롭다. 이렇듯 작품 속에서 캐릭터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나 플롯 중심의 구성을 보인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캐릭터의 존재가치가 기존의 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처음 이 작품의 세계관과 이야기를 접하게 되면 '무장사서' 와 '신익교단' 두 거대 집단의 대립을 통해서 무의식적으로 각각의 캐릭터를 아군과 적군으로 단순인식하게 되는데 이 작품은 그런 기대를 배신한다. 아군이라 생각했던 이가 어느 순간 배신하고, 주인공 격으로 여겨졌던 캐릭터가 어느 순간 사라지고, 비중있어 보이는 캐릭터가 죽어버리는 등 유사장르의 다른 작품에서 느꼈던 캐릭터의 가치를 손쉽게 뒤집어버린다. 그런 혼란 속에서 캐릭터의 개성에 집중하기 보다는 관계와 변화같은 구조적 성향을 띈 요소에 집중하게 되어버린다. 상대적으로 캐릭터보단 구조가 돋보이는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을 즐기는데 앞서 언급한 두 요소에 집중하기 마련이지만 독자적인 설정 또한 재미있다. '책'의 존재는 그런 흥미를 자극하는 요소 가운데 중심에 있는 것이다. 인간이 죽으면 책이 된다는 것과 함께 타인에게 고스란히 기억과 경험을 전달할 수 있다는 설정만으로도 여러 이론적 접근이 가능할 듯 싶다. 해석할 능력이 안되어 굳이 언급하진 않겠다. 하지만 그와같은 현상이 설정된 세계관의 여러 요소들과 반응을 일으키며 인성의 성찰을 꾀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자아를 상실하여 '고기' 라고 불리우는 인간들의 존재는 그런 점을 증명하는 단순증거이다.




판타지 액션 아니메로 장르적 특성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작품이다. 하지만 원작이 지닌 탄탄한 세계관과 이야기의 힘을 구현해낸 작품으로 좀 더 음미하면서 즐기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이를 통해서 원작에 대한 관심도 일어났으니 기회가 닿는대로 읽어보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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