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 - 미래는 준비된 자가 갖는다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 Woman on the Edge of Time 1,2 (2010, 1976)


마지 피어시
변용란/민음사/P.308, P.332



'사이버 펑크의 시초이자 페미니즘 소설의 고전' 이라는 표어로 홍보하고 있는 이 소설은 마지 피어시라는 작가의 작품이다. 발표된지 30년이 넘었건만 국내에 처음 소개된다는 그녀의 작품은 그 성향을 돌아볼 때 그동안 국내에선 필요치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페미니즘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는 특성은 그동안의 한국에서 소화해내기 어려운 것이었는지도.


코니는 아동폭행, 정신질환, 생활보호대상이라는 이력을 지니고 있다. 그런 그녀가 폭력에 노출된 조카를 보호하려다가 다시금 정신병원에 갖히게 되었다.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외롭고 답답한 생활에 지쳐가지만 어느 땐가 미래의 존재와 정신적 교류를 나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관계를 통해 코니는 먼 미래의 생활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는데......


'사이버펑크' 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흔히 윌리엄 깁슨이나 닐 스티븐슨을 떠올리기 쉽겠지만, 이 용어가 정립되기 수 년전 부터 이와같은 특성을 포함한 작품이 있었다는 것은 주목할만한 사실이다. '사이버펑크' 라는 단어가 존재하기 이전부터 유사한 특성을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기에 '사이버펑크의 시초' 라는 표어로 장식했던 모양이다. 물론 이런 수식어에 휘둘리자않고 개개인의 감성에 따라 읽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작품이 사이버펑크적인 성향을 띄는 주된 요소는 주인공 코니의 시간여행이다. 원인은 밝혀지지 않지만 어느 순간 미래의 존재와 정신적 교감을 나눌 수 있게되었고, 이를 통해서 정신적 시간여행이 가능해지게 되었다.(물리적 여행이 아니다. 몸은 그대로 현재에 남아있으면서 정신만이 이동을 하게된다. 이런 특성은 주인공 코니의 이력과 현재 정신병원에 있다는 사실을 통해서 시간 여행 자체에 대한 의구심을 들게만들기도 한다. 이로인해 보조적인 갈등으로 활용되는가 싶지만 세부적인 사실을 통해 비중있는 역할을 수행하진 못한다. 즉, 허구가 아닌 사실 그대로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여행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고 그 여행을 통해서 표현되는 미래 세계의 모습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작가의 상상력 아래 보여진 미래 세계는 기술적 진보가 꿈꿀 수 있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모습을 모두 보여주게되는데, 작가 스스로의 이상향으로 보여지는 유토피아는 단순 기술적 진보뿐만 아니라 인성적, 여성적 특성을 지닌 세계로 이 작품의 성향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세계관을 갖추고 있다. 반면 디스토피아의 모습은 앞서 언급한 차별화된 특성들이 무시된 결과가 낳은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하다. 정신적 교감을 통해서만 유입될 수 있는 가상적 공간(미래세계)을 통해서 기계와 인간의 이상적 융합과 비관적 변화를 대칭시켜 그려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사이버펑크의 시초라고 불리울만한 가치가 있어보인다.


이와함께 '페미니즘 소설의 고전' 이라고 불리우는 특성은 이상적인 미래의 모습과 절묘한 결합을 이루고 있다. 사실 이 작품에서 말하는 이상향의 모습은 페미니즘적 방향성을 띄고 있다. 단순 유토피아가 아닌 페미니즘적 유토피아라고 말해야 정확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아버지의 존재가치는 사라지고 권력의 가치도 사라졌다. 여성적이라고 단정지을 순 없을지라도 분명 억압적이고 권위적인 특성이 사라지고 공동체적 성향과 인성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사회를 유토피아로 묘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주인공 코니가 처한 현실과 맞물려 상대적인 의미의 페미니즘적 이상향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듯하다. [각주:1]


이러한 특성들을 지니고 진행되는 이야기는 비관적인 현실이 주축이 되어 답답하기도하고 안타까운 느낌을 전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형적인 약자로 묘사되는 주인공은 자신이 처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포기하지 않는다. 정신병원 탈출을 꾀하기도 하고,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연기를 자처하기도 한다. 물론 이상향과의 정신적 교류로 인해 위로를 받아온 것이 영향을 미치고 있던 것이리라. 더나은 세상에 대한 동경과 경험을 통한 자립감이 자아를 위한 투쟁을 불러일으키게 만들었을 것이다. 어쨌든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분명 넋놓고 감성적인 흐름에만 맡겨놓을 작품은 아니다. 문학이라는 이름아래 작가가 고민하는 현실적 문제점과 대안을 이해하고 고민하는 과정을 받아들일 수 있을만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보여진다. 다만, 우리 사회는 이러한 특성을 충분히 수용할만한 준비가 되었는지? 코니가 미래의 교감을 수용할만한 준비가 되었던 것과는 다르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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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음사에서 '모던클래식' 이라는 레이블 아래 출판된 책입니다. 20세기 후반의 여러 문학 작품들이 소개될 것으로 보이는데 지역적, 장르적, 문화적 제한 없이 나름의 기준으로 책을 소개하고 있는 듯합니다. 어떠한 작품들이 선별, 출판되는지 지켜봄으로 이 레이블의 성향을 짐작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군요.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 1 - 8점
마지 피어시 지음, 변용란 옮김/민음사


  1. 코니는 전형적인 약자의 특성들을 갖추고 있었다. 제3세계의 민족적 특성을 갖추고 있음과 동시에 갖가지 사회적 약자로서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특성은 여성이라는 존재를 통해서 발현되고 있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