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진 않지만 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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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전 (2008)


감독 : 김유진
각본 : 이만희/신현정/강희연


세계최초로 개발되었던 기계식대량살상무기 '신기전' 에 대한 액션 사극 드라마.

본 작품의 몰입도는 좋은 편이다.
다만 그 요인은 이야기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다루고 있는 소재에 있어보인다. 게다가 갈등의 요소를 내적인, 즉 인간의 내면의 것이나 관계에 있거나 구성단체 내부에 두고있는 것이 아니라 외적인 것에 두고 있는 것이 포인트이다. 바로 명나라 외적을 갈등의 주체로 둠으로써 국내 관객의 성향을 잘 활용한 좋은 사례가 된 것이다. 더불어 일반인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신기전'에 대한 존재를 부각시킴으로 상승효과를 얻어내기도 한다.
(신기전이 이야기의 주체이긴 하지만 관객의 몰입도를 돕고 공감대 형성에 이바지하는 조건을 볼 때 위의 사항은 결코 주와 부가 거꾸로 된 것이 아니다. 한국인이 유독 외부적인 압력에 강하다는 특성을 고려한 것일 뿐)
뿐만 아니라 배우진 또한 화려하고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주며 특히 정재영의 능청스런 연기는 이야기의 흐름을 매끄럽게 해준다. 이와같은 장점들을 통해 대중영화로써 흥행을 노림과 동시에 나름 가치의 명분도 부여케 해준다.

하지만.
이야기 구조의 부실함을 차마 외면치 못하겠다.
대표적인 예로,
보통 주인공의 직업은 그 캐릭터의 성향을 좌지우지 하는 조건 가운데 하나가 된다. 직업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주인공의 언행에 대한 증거가 되기도 하며 이야기 자체를 끌어가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 점에 대해선 이 작품은 뼈저리게 공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주인공 설주의 직업을 통해서 이야기 자체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정재영이 분 한 주인공 설주의 직업은 무엇인가?
처음 그는 동료들과 함께 운영하는 상단의 상주이다. 살림이 넉넉한 대상단도 아니고 나름 모험을 감행할 수 밖에 없는 혈기등등한 젊은 상주이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관객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아버지로 인해 화약전문가가 되버린다. 전문가가 안될 수가 없다. 단순히 몇 명의 기대가 아닌 나라가 전문가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렇게 화약전문가가 되어 신기전을 개발하던 그는 때때로 상황에 따라 검의 고수가 되기도 한다. 武 에 인생을 걸어 그 결과 나라의 내금위장이 된 창강(허준호 분)과도 막상막하를 이룰 고수이기도 하다.
도대체 누구냐 넌?

분명 언급한 직업적 특성은 이야기의 진행 상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다.
상인은 초반 명나라 사신 방문의 사건과의 연계와 이후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이 상업적 특성을 드러내는데 필요하며(이야기 진행과도 밀접히 관련있다), 화약전문가는 말할 것도 없으며, 정서적으로 혹은 이야기의 구성요소로 활용되는 액션씬을 소화하기 위해 검객의 위치 또한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필요한 특성들을 왜 한 캐릭터에 몰아주었냐는 것이 주된 의문인 것이다.
사실 이 영화는 캐릭터 중심의 영화가 아니다. 신무기를 개발하고 국력을 증강시키려는 속국 조선과 그 상황을 억누르려고 하는 명나라와의 신경전을 다룬 플롯 중심의 영화다. 이 영화의 가장 뛰어난 캐릭터는 신기전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등장인물의 역할은 (상대적인 의미에서) 수동적이다. 그것을 억지로 캐릭터의 비중을 높여 이야기를 끌어가려고 하니 삐걱거릴 수 밖에.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재영의 연기가 개연성의 윤활유 역할을 해주는 편이다. 이야기를 매끄럽게 해준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구조의 부실함에 대한 사례는 이것 뿐만 아니다.
설주와 홍리의 로맨스. 단순히 첨가될 수 있는 정서적인 설정이 아니다. 둘의 로맨스 계기는 두가지로 압축될 수 있는데 바로 외모에 대한 호감과 정이다. 물론 이 두가지만으로도 혼인에 골인 할 수 있을 정도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다른 작품에 한 해서다. 이 작품속에서 나라를 배신하고 동료를 사지로 몰아넣을 정도의 계기라고 보기엔 무리라고 보는 것이 개인적인 견해다.
이외에도 세종의 뜬금없는 변덕(아직도 화살에 붙은 한자가 무슨 자인지 몰라서 해석이 안되지만 그건 나 혼자만의 문제는 아닐 듯), 초반 설주와 창강의 관계(홍리와의 만남과 관계있다), 총통등록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 등 아예 납득이 어려운 상황도 존재한다. (혹은 정보전달이 원활하지 않는)
관객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수용하는 정보에 대해서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게되며 작가의 입장에서 그 의문에 충실히 답변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이 답변의 충실함은 곧 이야기의 충실함이 되어 관객에게 공감할 수 있는 환경과 재미있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냥 작가의 역량으로 원래 그런 것이라는 특권은 아무때나 발휘되는 것이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영화가 그 조건을 무조건 무시하는 영화는 아니다.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었다는 것은 나름의 구조가 이뤄졌다는 의미. 이 영화 또한 각각의 인과관계를 잇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다만, 그 끈이 어설프고, 스스로 무리하고 있으며, 답변을 들은 관객에게 찜찜한 기분을 남긴 부분이 일부 존재한다는 얘기다.

그래도.
부득이했다고 생각하고 싶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다른 이야기도 아닌 역사적 사실을 고생해서 찾아내 외부억압세력을 자력으로 물리친 통쾌함은 높이사고 싶다. 그리고 그 감정이 아쉬운 점을 덮어주는 것도 사실이고.
그냥. 좀 더 힘내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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