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 사랑의 개별적인 가치는.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Kroki Film O Milosci, A Short Film About Love (1988)


크지쉬토프 키에슬로프스키
크지쉬토프 키에슬로프스키/크지쉬토프 피에시비츠
올라프 루바젠코/그라지나 자폴로스카



우선, 이 글은 일반적인 관객의 시선을 다룬 것임을 밝힌다. 키에슬로프스키의 영화를 본 사람의 수 만큼 존재할 주관적인 시선 중 하나일 뿐이며,  故 키에슬로프스키의 이름 하에 있는 것을 해체할 능력은 없다.


줏어들은 이야기를 해보자. 그의 이 작품은 십계라는,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준 '십계' 라는 TV 용 10부작 영화의 일부분을 극장용으로 재편집한 작품이다. 십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고 일컬어지는 작품 가운데 반응이 좋았던 5.6편을 극장용으로 만들어 발표한 것이 이 작품과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 이라고 한단다.


토멕은 마그다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를 조금이라도 볼 수 있기를 바라며 온갖 행동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작 그녀를 만나게 되었을 땐 자신이 품어왔던 감정이 무너져버려 견디질 못하게 된다. 결국 토멕은 팔목을 긋게 되었고 마그다는 그제서야 자신을 바라보던 그의 시선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팔목에 붕대를 감은채 실신해있는 그가 돌아오길 기다린다.


그와 관련된 기억은 앞서 언급한 두 작품과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블루', '화이트', '레드' 같은 영화들이 잡지에 도배되던 기억이었다. 영화에 대해서 순간적인 감성적 소비만 할 줄 알았던 그 때, 많이 보고 느끼다보면 잡지에서나 들여다보던 장문의 평론들과 같은 시선을 가질 수 있을 것만 같았지만 20여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도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나를 보면 그냥 헛웃음만 나온다. 그래도 그런 나에게 동구권의 낯선 이름을 지닌 한 감독의 이름은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잡지에 자주 등장하던, 뭔가 있어보이는 이름이어서라기보단 좀 더 강렬한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유일하게 본 그의 영화로 '삼색 연작' 이 기억에 남아있는 것만큼. 개인적으론 줄리 델피가 주연으로 나온 '화이트' 를 가장 좋아했었지만.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다큐멘터리가 전공이던 감독이 인식하던 사랑은 무엇이었을까?
이 영화를 보고 난 후라면 최소한 핑크 빛 감성이 가득찬 것은 아니라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게다가 나에게 보여진 그의 사랑은 다른 존재간의 소통이 주제가 아니었다.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다. 흔히 말하는 남녀간의 사랑은 관계의 소통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이 영화에서 말하는 사랑이 남녀간의 그것이라는 전제하에서라면 말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성으로써의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 이 영화는 사랑을 상대적인 가치로써 바라보는 것이 아닌 사실적이고 개인적인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렇게 느낀 것이 맞다면 그의 작풍과도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누군가는 스토커가 등장하는 그렇고 그런 영화로 비춰보일지 모르지만 '집착' 이라는 단어로 표현될 수 있는 그런 사랑도 한 개인의 감정으로 실존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어떤 다른 요소가 섞이지 않은 젊은 남자의 사랑은 상대방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는 조건으로 단순 스토킹으로 취급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미 감정으로써 존재하고 있는 그 사랑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음은 동일한 소재를 다룬 다른 영화들과 분명한 차별화를 이루고 있다. 그 순수한 사랑이 누구나 짐작하는 목적과는 다른 목적을 향해 달려가면서 연민, 질투, 시기, 동경 등과 같은 특성을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그런 특성은 누구든 사랑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품게 되는 특성이 아니던가? 더불어 토멕을 중심으로 삼던 시점은 그들의 만남을 기점으로 마그다로 넘어가게 되는데, 마그다의 심정을 통해 사랑에 대한 다른 이의 특성을 표현하는 것 또한 놓치지 않고 있다. 토멕에 대한 호기심으로 출발한 그녀의 감정은 미안함, 관심, 이해를 거쳐 같은 시야를 공유하면서 동질감을 이루기까지의 세밀한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키에슬로프스키의 사랑에 대한 정의는 그런 것이었다. 지극히 객관적이면서도 상대적인 박탈감 없이 감정을 아우르는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초반 장면들을 봐도 알겠지만 이 영화는 시간을 축으로 삼는 서사는 이미 파괴하고 시작했다. 마무리 역시 현실감을 동반하는 서사와는 거리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성향은 그가 보여주는 사랑의 특성들이 개별적으로 존재의 가치를 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흔히 로맨스 영화를 통해서 느끼는 것과 같은, 쌍방의 감정적 변화가 상대방에 대한 반응으로써 가치를 보여주는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런 감정의 돌출과 엮임이 현실적인 공감을 불러오긴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그 감정들 자체는 분명히 우리 안에도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감정을 대했을 때 마그다가 시행착오 끝에 느낄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 역시 누구나 사랑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어쨌든 이 영화를 통해서 사랑에 대한 여러 특성들을 객관적인 느낌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영화들은 이미지의 상징성으로도 유명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흐름 속에 녹여놓은 객체를 분리할 능력이 없어 접근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최대한 느낀 바를 늘어놓긴 했는데......
난 누군가의 사랑을 이해할 마음가짐을 지니고 있는지, 혹은 내 사랑을 이해시킬만한 진정성을 지니고 있는지 생각해봐야겠다. 안그러면 평생.....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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