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월광게임 - Y의비극`88


월광게임 - Y의 비극 `88 (2007, 1989)


아리스가와 아리스
시공사



현재 일본에서 신본격 추리소설의 대표주자로 불리우는 아리스가와 아리스(본명_우에하라 마사히데)의 첫번째 장편 소설이다. 추리소설은 시간이 지나면서 순수 탐정소설의 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장르의 변형을 이뤘는데 일본에서는 그런 변형의 결과를 '본격' 과 '변격' 으로 구분지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순수 탐정소설을 '본격' 이라 칭하고 그외의 소설들을 '변격' 이라고 분류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근래의 순수 탐정소설을 부흥하고자 하는 흐름을 '신본격' 이라 명명하고 '본격' 테마를 주로 사용하는 작가들을 '신본격' 의 대표주자로 뽑는 등 일본, 자국 내에서만 통용될 수 있는 문화적 흐름을 정의내렸다. 그리고 아리스가와 아리스라는 필명을 사용하는 이 작가가 '신본격' 이라는 흐름의 대표주자 가운데 하나로 뽑히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런 이야기를 써내려가면서 안타깝게 느껴지는 한 가지는 옆 나라의 사실을 전달하면서 단순 번역된 용어를 그대로 사용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내에 정립된 용어가 없기 때문인데, 혹시나하고 국내에 추리소설 용어를 정리한 책이나 문서가 있는지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질 않았다.[각주:1] 미처 알지 못하는 경우일거라 생각되지만 용어 조차 체계적으로 정립된 것이 없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에서 추리소설 문학이 어떠한 취급을 받고 있는지 짐작가능케 한다. 한 숨만 나오는 현실이다. 극복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에이토 대학 1학년 생이다. 그는 부원이라고 해봤자 총 3명뿐인 추리소설연구회에 입부하고 그들과 함께 휴화산인 야부키 산으로 캠핑을 하러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캠핑을 하러온 다른 3팀의 대학생들과 합류, 17명의 학생들은 즐거운 캠핑을 즐기게 되었다. 하지만 야부키 산의 화산활동으로 그들은 산 중에 고립되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살인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다. 길이 무너져 산을 내려갈 수도 없고, 구조대는 화산 활동으로 접근하기도 힘든 상황 속에서 연이어 살인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야기가 옆으로 샛다.
'클로즈드 서클', 즉 고립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는 이 이야기는 아리스가와 아리스라는 작가와 동명을 이루는 캐릭터를 화자로 쓰여지고 있다. 이야기를 서술함에 있어서 1인칭 시점은 종종 한계에 부딫히곤 하는데 추리소설의 특성 상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은폐하고 관찰자의 시점을 강조하는 성향은 1인칭 시점과 잘 맞물리는 듯하다. 게다가 이 작품의 화자가 탐정 역할을 겸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화자의 시점은 공평하게 전달된다. 화자이자 관찰자로서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역할은 마치 셜록 홈즈의 활약을 전달하는 왓슨과도 유사한 점이 있으니 '신본격' 에 어울리는 고전의 귀환이 아닐까 싶다.


물론 아리스가와가 사실만을 건조하게 전달하는 것만은 아니다. 제목에서 '월광' 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처럼 작가는 달빛에서 비롯되는 광기를 정서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데 제한된 공간과 급박한 상황과의 결합이 제법 감각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다만 상대적으로 오래되어 보이는 정서가 현 시대의 그것과는 달라 이질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기에 취향에 따라 선택적이 될 수 있겠다. 아무래도 시구를 외우고 문학 표현을 읊조리는 모습을 요즘 시대의 젊은이들에게서 쉽게 발견할 수는 없잖은가? 더불어 아리스가와의 개인적 감정을 적절히 섞어주어 플롯의 다채로움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뭐, 그냥 의도적인 방해라고 생각해도 상관없고.


처음 제목을 접하고는 'Y의 비극' 이라는 제목을 차용하고 있기에 앨러리 퀸의 그 소설과의 연관성을 의심했다. 물론 'Y' 라는 단서를 활용함에 있어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도 있지만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솔직히 비교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앨러리 퀸의 'Y의 비극' 을 본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기억이 나질 않기에. 흐흠.
마지막으로 그 책을 본 지가 15년도 넘었다. 기억으로는 초등학생 때를 포함해서 2-3번 정도 되는 것 같은데 도무지 생각나질 않아 비교 불가능했다. 다시 읽어볼 것도 고려해봤으나 현재 책을 보유하고 있지도 않고 시간도 없어서 실천하지 못했다. 생각난 김에 지금은 고전으로 분류되는 본격 추리소설들을 다시 읽어 볼 의욕은 좀 생겨났다만......


어쨌든 이 책이 보여주는 논리는 '독자에 대한 도전' 이라는 문구를 따로 삽입할만큼 입증된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정작 답지를 펼쳐보면 한국인인 내 입장에서는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조건이 포함되어 있어서 도전은 그냥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에도가와 란포가 탐정소설은 '논리적인 과정을 즐기는 것' 이라고 말했지만 국내 독자들은 그냥 주어지는 과정을 즐기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자신의 의식은 개입되지 못하겠지만.


더불어 마무리를 지음에 있어서 논리를 풀어놓기만 하기 때문에 다소 허탈한 느낌도 없잖아 있다. 일반적으론 추리소설의 마무리는 모든 갈등을 정리하는 단계로써 갈등의 심화는 최고조로 오르게 되는데 이 작품의 경우 그런 감정적 고조를 걷어낸 느낌이어서 사뭇 당황했다. 뭐 일반적인 관점에서의 견해일 뿐이고, 작가는 나름의 의도를 반영한 것이었겠지만 좀 낯설었다.


그런 낯설음 가운데서도 본격 추리소설의 느낌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책을 읽는 것이 워낙 잡식성이라 본격이든 변격이든 가리지 않지만 본격 추리소설을 읽는 것은 어렸을 때의 기억을 자극하는 것이기에 남다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게다가 책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나의 어렸을 때와도 겹치지 않는가? 묵혀두고 잊고 있었던 글들을 좀 들춰볼까. 도무지 내용이 생각안나서 다시 보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니, 조금은.


★★★


+ 본문의 이미지는 인용의 용도로만 활용되었습니다.
+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출판사에서 갖고 있을겁니다.


월광 게임 - Y의 비극 '88 - 6점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김선영 옮김/시공사

  1. 과거 추리소설 번역가로 유명한 정태원씨가 故 이가형교수와 함께 추리소설 용어 백과사전을 기획, 저술했었다고 하는데 끝내 출판되지 못했다고 한다. 물론 그 기획도 용어의 단순 번역에 불과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한국적으로 변환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쉬운 기획물인 듯하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