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다큐멘터리 3일 - 세상에서 가장 느린 전차, 경전선 3일


20세기와 21세기의 큰 차이점 가운데 하나는 '기다림'에 대한 가치이다.
고진감래(苦盡甘來)의 의미가 효용성 있던 과거에는 기다림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자리잡았었지만 오늘 날에는 더 이상 미덕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기술발달이 가치변화를 가져왔는지, 가치의 변화가 기술발달을 자극했는지 모르겠지만 현재의 우리는 수 많은 도구의 도움을 받아 '좀 더 간결하고 빠르게!' 를 외치고 있다.


그런 우리들에게 아직 기다림을 미학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것이 있다.
평균 시속 50km.
경부선 삼랑진역과 호남선 광주송정역 사이를 잇는 노선. 경상도와 전라도를 이어주는 노선이라 경전선이라 칭함.
총 49개 역, 300여 km 구간을 약 6시간에 걸쳐 운행.



'세상에서 가장 느린 전차' 라는 제목으로 '다큐멘터리 3일' 을 통해 소개된 경전선.
이미 6년전에 300km 넘는 속도로 운행되는 KTX 가 개통된 현실과는 사뭇 다르다.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의 발달과 함께 기다림의 가치가 빠르게 퇴색해버린 오늘 날, 느릿한 완행선의 의미는 무엇일까?


경전선 전차에 몸을 실은 어느 젊은 여성은 추억을 얘기한다. 왠지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어르신의 회상을 듣는 듯하지만 그녀가 기억하는 모습은 분명히 실체가 있었다. 이와는 다르게 노년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도시에 가서 장사를 하기 위해 몸을 실은 할머니도 계셨다. 생계를 위한 선택은 또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수십년 직장생활을 마치고 노후의 여가로 이 전차를 선택하신 분도 계셨다. 전차 안에서 글을 쓰신다는 할아버지에게선 여유와 정신적 만족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젊었을 땐 생활에 쫓겨, 나이 들어선 지병으로 여행할 기회가 없었다는 노년의 부부에게선 화살같은 시간의 흐름을 느릿한 전차를 통해 잡아보려는 느낌도 얻을 수 있었다.



느릿한 완행 열차에는 오랜시간 베어온 삶의 체취가 느껴진다.
추억도 좋고, 노후의 여가도 좋고, 생활을 위한 노력도 좋다. 어쨌든 각각의 삶의 일부분으로 움직여왔고, 현재도 운행되고 있다. 물론 과거에 폐쇄된 노선도 있었고, 앞으로도 경전선의 모습은 일부분 변형되거나 폐쇄될 예정이다. 하지만 멈춤없는 질주만을 추구하는 삶 속에서 억지로라도 과거의 리듬을 기억하고 있는 노선에 몸을 실어주는 것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숨을 고를 장소가 아직 존재한다는 것이 행운으로 여길 수 밖에 없는 세상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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