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KBS드라마스페셜 - 위대한 계춘빈


왕기남은 도화지 위에 그려진 그림을 보면서 계춘빈에게 이러저러한 설명을 하고 있다.
" 두려움이 어쩌고 폭력성이 저쩌고......"
계춘빈은 그런 왕기남의 설명을 들으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선생님, 이 그림이 무서우세요?"
계춘빈은 왕기남의 얼굴에 병아리가 그려진 그림을 들이밀고 있었다.


본 드라마의 에피소드 중 하나이다. 캐릭터의 성향, 관계, 더 나아가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메시지가 담겨있는 장면이다. 직관적인 형태로 캐릭터를 입혔으면서도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우회적이다. 이거 재미있는데?


왕기남은 미술을 통해 치료를 하는 심리치료사이다. 그리고 계춘빈은 유치원 교사이다.[각주:1]
왕기남은 현상을 이성으로 읽어낸다. 그리고 계춘빈은 현상을 감성으로 받아들인다.
왕기남은 모던보이를 연상시키는 의상을 고집한다. 그리고 계춘빈은 다양한 아이템이 조화를 이루는 거리패션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서 이성과 감성의 대립, 이성중심주의의 모더니즘과 이에 반발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상충 등과 같은 이야기를 던져 놓을 수도 있겠으나 좀 더 편하게 접근해보자. 사실, 그런 이야기를 풀어놓을 능력도 안되지만.


앞서 언급한대로 이성적인 특성을 드러내는 왕기남과 감성적인 특성을 드러내는 계춘빈과의 관계에서 발생되는 여러 에피소드를 늘어놓은 작품이다. 그들은 특정지을 수 있는 성향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음과 동시에 서로 상대방의 특성이 결핍되어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외적/내적 특성들을 보유하면서 서로 결합되어가는 모습은 앞서 슬쩍 언급한 이념의 관계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기도 하다. 서로 상충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합되기에 용이한 유사한 흐름 또한 지니고 있다는 특성 말이다.


드라마에선 두 특성을 동일한 조건에서 상충시키는 것은 아니다. 사실 비중은 감성적인 것에 더 실려있다. 변화는 왕기남을 중심으로 일어나며 필요에 의해 먼저 다가서는 것은 왕기남이다. 이성이 감성에게 동화되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주위 다른 캐릭터들은 감성적인 특성을 뿜어내고 있으며 유일하게 감성을 이성으로만 받아들일 줄 아는 왕기남의 여자친구는 도태되어 버리는 모습이다. 게다가 그런 캐릭터들이 활동하는 공간은 현실감이 결여되고 과장된 공간으로 이성적인 접근이 불가능한 공간이다. 애초에 이성과 감성의 균등한 비교가 아닌 일방적인 동화만이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재미있다?


드라마라는 매체 자체의 성향을 본다면 앞서 언급한 형태의 서사가 진행되는 것이 당연하다. 드라마는 다큐멘터리가 아니지 않은가? 시청자 또한 감성적인 동화를 느끼기 위해 드라마를 보는 것이니 감성이 더 중시되어 표현되는 모습은 더 재미있다.(표현 자체나 내러티브 모두 포함하여) 게다가 전체적인 분위기는 가볍게 유지하며, 곳곳에 코믹한 설정들을 삽입하여(과장된 세계관 자체가 코믹하다) 시청자의 접근성을 돕고 있으니 유쾌한 시청을 위해선 더 바랄 것이 없다.[각주:2]



2달전부터 방송을 시작한 KBS 드라마 스페셜은 단편 드라마의 부활을 알리기 위해 알찬 준비를 해온 듯하다. 아직 7번째 작품을 방영한 것에 불과하지만 만족감에 있어서 떨어지는 작품은 아직 보이질 않았다. 단편 드라마는 한정된 시간 내에 완성도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장편 드라마보다 좀 더 밀도 있고 심화된 공력을 드러내곤 한다. 단순히 초반이기 때문에 완성도 높은 작품들을 선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진 않았으면 한다. 다음 주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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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왕기남의 이성중심주의를 심리치료사로서 표현했다면 계춘빈의 감성적 특성은 그것을 특징으로 삼을 수 있는 아동의 정서를 반영한 의미로 유치원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으로 보여진다. [본문으로]
  2.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계속 등장하는 것은 낙서인데, 단순히 코믹한 정서를 전달하는 것외에도 텍스트를 이미지화시켜 변형시킨 시도는 이성적인 이해에 대한 감성적인 접근을 잘표현한 듯싶다. 극 중 계춘빈의 이름 또한 이러한 접근으로 이뤄진 것인데 '위대한 게츠비'의 이름을 감성적 해석으로 접근한 것이다. 그냥 장난일 뿐일수도 있지만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