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방황하는 칼날 - 감성과 이성의 충돌



방황하는 칼날 さまよう刃 (2008, 2004)

히가시노 게이고
바움




의도치않게 최근들어 비슷한 테마를 다룬 영화나 책을 보게 되었다. 그냥 우연일 뿐이다.
하지만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와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논란의 여지가 많은 소재이며 쉽사리 답을 낼 수 없는 문제일 것이라 보여진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지만 과연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나가미네는 일찍 아내를 여의고 고등학생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딸 조차 불꽃놀이를 구경하고 돌아오던 중 납치되어 강간, 살해되었다. 삶의 유일한 목표였던 딸을 잃어버리고 괴로워하던 그는 정체불명의 누군가로부터 제보를 받게되었다. 딸을 살해한 사람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딸을 살해한 사람은 미성년자라는 것도. 충동적이었으나 그는 용의자 가운데 한 명을 살해하게되고 나머지 한 명 또한 직접 심판을 내리겠다고 결정한다. 순식간에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한 나가미네는 용의자 한 명을 추격하고, 경찰은 그런 나가미네를 추격하게 되는데......


다양한 인물과 다양한 이야기
내용을 짤막하게 소개해봤는데 글에서 보는 것처럼 획일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진 않다. 아니, 훨씬 입체적이고 다양한 캐릭터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형태의 갈등을 보여주고 있어서 미스터리 소설로써의 가치는 제법 괜찮은 편이다. 주인공인 나가미네가 일으키는 갈등을 주축으로 사건과 연관성이 있는 인물들이 각기 다른 형태의 고민을 안고 있는 모습이 풍성하게 느껴진다.


자식을 잃은 아버지가 있는 가운데 누군가는 목숨을 내걸고 복수를 하고픈 이가 있으며, 비슷한 상황에 처했음에도 다른 선택을 하는 이도 있다. 용의자의 협박이 두려워 오히려 그들이 죽어주기를 바라는 이, 법과 국민을 보호해야하는 입장에서 그 가치의 비중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혼란스러워 하는 이 등의 이야기를 보여줌과 동시에 이들을 지켜보는 대중의 갈등을 끊임없이 이슈화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고민과 갈등은 그 주체의 관계만큼이나 적절히 맞물려 돌아가기도 하지만, 선택에 따라 충돌을 일으켜서 독자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만드는 주된 요인이 되고 있다. 게다가 '복수'라는 코드는 인간 역사와 함께 할만큼 오래된 것이지만 여전히 흥미를 자극시키는 것이잖은가. 사회적 이슈를 이해하기 쉬운 에피소드를 통해 적절히 감성화시켜 흥미를 돋우는,(뭔 소리야) 즉 생각할 거리도 주면서 재미도 주는 그런 책임은 분명한 듯하다.



법이 문제야
이 책의 나가미네 또한 그랬으며, '하드캔디'의 헤일리도 그러한 경우이다. '모범시민'의 클라이드 역시 마찬가지였으며, '퍼니셔'의 프랭크 캐슬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들은 모두 범죄의 희생자들이다. 그리고 으례 당연히 받아야 할 법의 위로에 불만을 품은 자들이다.[각주:1] 그렇기에 그들은 스스로 나설 수 밖에 없었고 폭력에 희생당한 그들이 폭력의 주체가 되어버렸다.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낳을 수 밖에 없는 이런 상황의 중심엔 법에 대한 불신이 있다.
무엇으로도 쉽게 위로받을 수 없는 상처를 받은 그들에게 있어서 가해자의 합당한 처벌은 최소한의 위로이다. 그리고 현 사회는 그런 책임을 법에게 주었다. 하지만 법은 동정심없이 범죄에 대한 책임과 갱생이라는 논제를 두고 가해자를 저울질한다. 결과는 피해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분명 이런 결과는 감성적으로, 개별적으로 사건을 받아들이는 인간에게 너무나 잔인한 것일 수 있다. 게다가 피해자의 경우, 납득하기 조차 어려운 현실이다. 하지만 사회는 쉽게 수긍하고 타협하지 않는다. 더딘 변화속에서 개개인에게 강요만 할 뿐이다. 저항할 힘이 없는 개인은 결국엔 자신의 뜻과 다르다 할지라도 사회의 뜻에 끌려가게 된다.[각주:2] 
이처럼 인간의 감성과 사회의 질서는 뜻하지 않게 상충될 수 있다. 상충하는 가운데 필요한 타협점은 아직도 찾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찾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책 또한 답을 제시하고 있진 않다. 그냥 현실을 보여줄 뿐이다. 다만 감성적인 특성이 이 사회 속에서 여전히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희망적인 메세지를 동봉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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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도 아동성폭행으로 수감된 어느 범죄자의 형량이 이슈화된 적이 있었다. 이 사회의 법은 그 형량이 적당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피해자와 피해자를 동정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런 사회의 결정에 불만을 품었다. 더불어 느슨한 범죄자 처우에 불안을 느끼기도 했을 것이다. 과연 어느 정도의 책임을 져야 피해자와 그 외의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무조건 죽여야만하나? 사회의 법이 고민하는 문제도 그런 것일게다. 특정 개인만을 대상으로 삼을 수 없는 법의 특성 상 많은 시간과 시행착오가 필요할 것이다. 그런 점은 이해하지만 분명히 인간의 감성을 배려한 타협점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범죄자에게 어떤 책임을 지게 만들어도 피해자와 가족들의 슬픔을 없애기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최소한의, 피해자와 가족들 그리고 그들을 동정하는 제 3자에게서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게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범죄로인한 불안을 없앨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보복이 두려워, 혹은 유사 범죄의 피해가 두려워 불안에 떠는 것을 막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 않는가. 
감성과 이성의 충돌은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 그러한 문제를 직시하며 해결점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인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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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출판사에서 갖고 있을겁니다.


방황하는 칼날 - 8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바움

  
  1. 하드캔디의 헤일리와 퍼니셔의 프랭크 캐슬은 다른 인물들과 사안이 좀 다를 수 있으나 범죄로부터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동일하다. 즉, 법에 대해 불만을 품을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여겨진다. [본문으로]
  2. 예정되어 있는 것같은 이와같은 수순은 현실 속에서 다양하게 적용될 수 있을 듯하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