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화차 - 내가 나일 수 있는 근거는?


화차 (2000, 1992)

글쓴이 : 미야베 미유키
출판사 : 시아출판사



요즘처럼 문명화된 사회에서는 개인의 아이덴티티를 몇 장의 서류,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문자와 숫자가 대체하고 있다. 아, 한국에서는 13자리의 숫자를 포함해서. 그리고 우리는 그 몇 자의 문자와 숫자가 그 사람을 나타내고 있다고 너무나 쉽게 믿어버린다.
이 책에서는 그런 문자와 숫자를 통해 누군가가 나의 아이덴티티를 통채로 빼앗아가버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총기사고로 휴직 중이던 경찰관 혼마는 느닷없이 찾아든 조카의 부탁을 받게된다. 그것은 실종된 약혼녀를 찾아달라는 것. 대수롭지 않게 실종된 약혼녀, 세키네 쇼코를 찾아나서게된 혼마는 놀라운 사실을 접하게 되는데, 그것은 조카의 약혼녀인 쇼코와 2년전까지 존재해 온 쇼코가 서로 다른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면 조카와 약혼한 쇼코는 누구인가? 그리고 원래의 쇼코는 어디로 갔는가?


1992년, 글쓴이에게도 비교적 초기 작품인 이 작품은 미스터리 속에 사회적 이슈를 녹아 넣은 그녀의 특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하지만 서두에서 말한 것과는 달리 주된 화두로 삼은 것은 '소비자신용' 문제에 대한 것이다. 편리함을 추구하기 위해 간략화되고 단순화된 신용문제와 그로부터 파급되는 여러 현상에 대해 다소 비관적인 시선이 곁들어있다.
물론 이 당시에도 충분히 사회적 이슈로 다뤄졌던 문제이며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서도 여전히 뚜렷한 해결책 없이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책이 쓰여진지 약 20년이 지났음에도 독자에게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시키고 있다. 매달 나오는 카드 값으로 고민 한 번 안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난 이 책에서 단순히 신용문제가 일으킨 사회적 변화에 대해서 주목하기 보다는 (물론 책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일의 원인이며 근거가 되는 것이지만) 누군가가 감쪽같이 나를 대신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에 더 주목하고자 한다. 단순히 작품 내 설정일 뿐이잖은가? 라고 치부할 것인가? 실제로 오늘날 개인정보 누출과 주민번호 도용이 이뤄지고 있잖은가. 미성년자 아이들은 온라인 게임을 하기 위해서 부모님의 주민번호를 너무나 쉽게 도용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오히려 개인의 신상정보를 쌓아놓은 DB가 없던 시절, 얼굴과 육성으로 개인의 개체성을 입증하던 시절은 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각주:1] 발달된 문명의 폐해라고 치부하기엔 좀 유치해보이고(편리함을 누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니), 분명 개선책이 필요한 문제이지만 나아지는 모습은 아직 보이질 않고 있다. 기업은 여전히 '너 믿지 못하겠다'며 개인 신상정보를 다 공개하길 요구하고(잘 관리하는 것도 아니면서), 개인은 자신의 이득을 위해 거짓된 정보를 제공하길 서슴치 않는다. 그냥 답답하다는 생각만 든다.

얼마전에는 영화가 아닌 현실 속에서 페이스 오프가 이뤄졌다는 뉴스를 들었다. 물론 뉴스에서는 한 생명의 정상적인 삶을 위해서 이뤄진 의료행위임을 알렸다. 하지만 이것을 보니 얼굴로도 이젠 개인의 개체성을 증명하는 것이 어려운 시대가 오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남은 것은 유전자 뿐인가. 언젠가 온라인 사이트 하나 가입하기 위해서 유전자 감식을 해야하는 시대가 올 것인가? 오버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앞으로 어떤 시대가 올지 아무도 모르니 그냥 우겨볼란다.

신용문제도 그렇고 개인정보 문제도 그렇다.
아직 사회적 시스템은 불안정하고 항상 문제를 끌고 다닌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 마냥 부정하고 질책하는 것이 아닌 같이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여겨진다.
이 작품에서도 소비자신용 문제에 대해서 무조건 부정하고 있진 않다. 그로인해 발생되는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개선책을 찾아보자는 의도가 엿보이고 있다.
그려. 그런 마음가짐이 남아 있는 한 이 사회도 아직 살만 한 곳이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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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물론 과거에도 국가에서 조사한 호적 기록과 호적패가 있었지만 사회내에서 개인의 아이덴티티를 입증하기 위한 주된 장치는 아니었다 판단되기에 논외로 친다. 특히 신용문제와 관련해서.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