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 급성복막염 수술 체험기

충수염제거 수술 즉, 급성맹장 수술로 인하여 입원하게 되었다.(정확한 진단명은 급성복막염으로 되어있었다) 입원기간은 8월26일부터 9월5일까지. 맹장수술치곤 꽤 오래 입원하게 되었는데 이유인즉슨, 단순맹장제거 수술이 아닌 터져버린 맹장을 제거하는 수술이었기에 회복시간이 일반맹장수술보다 훨씬 길어지게 되었다. 3박4일이면 끝날 과정이 3배로 늘어난 것이다. 더불어 기존부터 증세가 있었던 위 문제가 불거지면서 더 복잡해졌다. 위 내시경으로 확인된 바, 식도염, 위염, 위궤양 증세가 있었다고 한다. 결국 외과/내과를 고루고루 치료하게 되었고 10박 11일만에 퇴원하게 되었다. 이후 외래진료가 계속될 예정이다.


 

1. 25일 포스팅했던 내용은 결국 오진이었다. 배속에 카메라를 쑤셔넣고, 열어보니 원인은 명확하게 드러났고 결국 난생 처음 전신마취를 한 수술을 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긴장되진 않았다. 오히려 마취 직전엔 수술실 여자스탭에게 농담을 건네기도 했었으니. 다만 워낙 영화나 드라마를 봐오던 것이 있어서 신경쓰이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마취중 각성이었다. 풋

전문가들이 이 얘기를 들으면 비웃을지도 모르겠지만 일반인으로서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각성은 커녕 수술이 다 끝나고 깨울 때까지 아무런 기억 없이 잘 자고 일어났다.

 

 

2.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전신마취 경험은 전무했는데 마취가스를 들이키면서도 생각보다 마취상태가 빨리 되지않는 것 같아 각성에 대한 의심은 더욱 불거졌다. 하지만 정말 흔히 하는 말처럼 '훅~가버렸다'. 내가 마취가 되고 있구나 라는 인식조차 할 겨를 없이 정신을 잃었다. 신기하고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3. 수술 후 내 배에는 총 4개의 구멍이 생겼다. 예전처럼 개복수술을 하지 않고 복강수술을 하는 탓에 가볍게 구멍만 뚫고 카메라가 들어갈 구멍 하나, 수술도구가 들어갈 구멍 2개로 수술은 완료되었다. 그리고 맹장이 터져서 수술한 경우이기에 따로 튜브를 삼입시킬 구멍이 하나 더 만들어졌다. 그 튜브는 10일간 배에 삽입되어 연결되어 있었으며 외부로 복부 내의 이물질을 빼내는 목적으로 유지되었다. TV에서나 보았던 것을 직접 하고 있으려니 무척 신기했다.

 

 

4. 수술 후 윗 배의 통증을 느끼게 되었는데 결국 위 내시경을 하게 되었다. 참고로 위 내시경 역시 처음 해보는 것이었다. 촌놈이라고해도 할 말은 없지만 별로 병원 신세 질 일도 없었고 누구나처럼 병원가는 것을 싫어해서 이번 경우처럼 통증으로 방바닥을 뒹굴기 이전에 내 발로 병원을 찾아갈  일은 없었던 것이다. 아무튼 첫 경험인 내시경 검사는 당연히 수면 내시경으로 택했다. 어? 그런데 의사의 설명을 들어보니 마취하는 것처럼 의식을 잃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전신마취를 한 경험처럼 한 숨 자고 일어나면 끝나있겠지 라는 가벼운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고 한다. 어라? 그러면 안되는데. '목구멍 깊숙히' 무언가를 집어넣는 경험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았기에 협조를 구한다는 의사의 말을 반갑게 들을 순 없었다.

뭐, 결론부터 말하자면 검사대상자는 그냥 자고 일어나는 것이랑 큰 차이는 없다고 본다. 검사 과정을 기억할 수가 없으니말이다. 수면 내시경이라는 표현은 적절하다고 생각은 한다. 다만 본질은 그와 다르기에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는 있었다. 내시경 검사 자체를 쉽게 비유하자면 만취 상태에서 검사하는 것과 유사할 듯 싶다. 말 그대로 의식은 깨어있기 때문이다. 만취상태처럼 고통에 대해서도 무감각해지고 필름이 끊기 듯 기억을 잃어버리는 공통점이 있는 듯 하다.

나의 경우 검사가 다 끝나고 나서 전혀 기억에 없는 말을 그렇게 해댔다고 한다. 한 말 또하고 또하고 또하고. 보호자로 와 계셨던 어머니께 많은 말을 했다고 하는데 전혀 기억이 안났다. 결국 재워서 깨어난 후 부터 나의 기억은 다시 재생되게 되었다.

현재 내과 치료도 병행하고 있으며 두어달 뒤엔 다시금 내시경 검사를 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수면 내시경 검사가 무척 두렵다. 역시나 신기한 경험이었지만 내가 통제하지 못한 상황에서 무슨 이야기를 지껄일지 내심 두렵다. 나도 나름 비밀이 있는 남자다. 허헛

 

 

5. 입원 후 회복하는 과정은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다. 아니, 사실 나보다는 간호사들이 좀 어려워했다. 왜냐하면 내가 혈관 찾기 어려운 체질을 지니고 있어서다. 살이 많이 쪄서라는 의미가 아닌, 혈관이 얇아서 쉽게 드러나지 않기에 간호사들이 무척 곤란해했다. 경력이 짧은 간호사는 나에게 주사놓기를 기피하거나 내 손등과 팔에 무수한 바늘 자국을 남기곤 했다. 간호사들은 주사바늘을 넣었다 뺏다 하는 과정으로 인해 생기는 고통에 대해 미안해 했지만 사실 개인적으론 그 정도의 고통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충분히 참을 만한 것이었고, 신경쓸 정도의 고통은 아니었기에 별 상관은 없었다. 오히려 주사바늘을 들고 당혹해하는 간호사들이 더 안쓰러웠을 뿐이었다. 아. 조금 아팟던 경우도 있긴했다. 어떤 이유에선지 링거를 맞고 있으려면 자주 피가 역류해서 막히곤 했는데 그것을 억지로 뚫기 위해서(다른 자리를 찾아서 새로 꽂을 만한 여유가 없으니) 주사액을 강제로 주입시키곤 했는데 그 땐 조금 따끔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간호사 한 분은 채혈할 때 혈관을 찾다찾다 못찾아서 결국 발에서 뽑자고 해서 그러라고 했더니 손에서 채혈하는 것과는 천지차이의 느낌에 놀랐다. 수없이 주사바늘을 꽂아도 꿈쩍 안했었는데 이 경우는 속으로 억!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앞으론 절대로 동의하지 않을거다.

어쨋든 퇴원하면서 간호사 분들께 진심어린 목소리로 고생하셨다는 말을 남기고 왔다.

 

 

6. 입원하고 있는 동안 당연히 시간적 여유는 넘치고 넘쳤다.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 중 으뜸은 독서. 하지만 사람들이 분주하게 드나드는 공간이라 생각보다 집중력은 좋지 않다. 결국 열흘간 입원해있는 동안에 읽은 책은 총 4권뿐이다. 어떤 종류의 책이느냐도 중요하겠지만 읽은 책들이 어려운 책은 없었으니 뭐. 그래도 읽은 책 가운데 '피의 책'은 무척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다시 잡은 책은 움베르트 에코의 '푸코의 진자'. 그 중 1권만 읽고 퇴원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보고 다시 읽게 된 것이니 15년은 족히 지났구나. 내용이 기억 안날 정도이니.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는 질문에 쉽게 떠오르는 이름은 톨킨과 에코였다. 움베르트 에코는 작가라고 말하기엔 본업의 포스가 쎄서 무리가 있지만 그래도 처음 그의 글을 접한 것이 그가 쓴 소설이었으니 으례 그렇게 답하곤 했다. 간호사 가운데 한 분이 어려운 책을 본다고 했지만 사실 '푸코의 진자'는 어려운 책은 아니다. 물론 어휘와 구조가 불친절해서 가독력이 좋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오컬트와 신비주의를 구성하는 여러 역사적 사실에 관심이 있다면 이보다 더 흥미로운 책은 없을터이다. 2권을 보는 중 퇴원했으니 빨리 마무리를 지어야 할 듯.

 

 

7. 아! 그러고보니 확인이 필요한 것들이 있어서 새벽에 근무하는 간호사에게 응급실 상황에 대해 질문을 했었다. 사실 정식 인터뷰 요청을 할까도 생각해봤지만 내 작업의 가치에 대해 입증하기 어려워 소심하게 망설이던 중 그나마 응급실 경험이 있는 스탭에게 물어본 것이었으나 예상대로 말을 아꼈다. 약품의 정확한 이름이나 용량의 사용법까지 묻는 것이어서 그런 듯.

그리고 입원한 병원이 우리 동네에선 제법 오래된, 최소 40년은 된 병원이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관계자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괴담이 있나 알아보았으나 그런 것은 없다고 한다. 병원 이미지를 생각해서 감추는 것 같진 않았다.

 

 

 

아무튼 이번에 곪고 터지고 한 속을 다스려놨으니 한 동안 잠잠해지겠지.

그나저나 한 동안 외래진료는 계속 될터인데, 나오자마자 소주가 땡기니 어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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