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그 미 투 헬 - 건재하다

 

드래그 미 투 헬 (Drag me to Hell, 2009)

 

감독 : 샘 레이미

각본 : 샘 레이미/ 이반 레이미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지내오는 은행원 크리스틴. 그녀에게 갑작스런 불행이 닥쳐오게 된 것은 어느 집시 할머니의 대출상환연기 요청을 거절하면서 부터였다. 라미아의 저주를 받게 된 그녀는 앞으로 3일후 악마 라미아에 의해서 지옥으로 끌려가 버리게된다. 이 상황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샘 레이미의 귀환
21세기에 들어와서 '스파이더맨' 시리즈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샘 레이미는 사실 공포영화로 데뷔를 한 감독이다. 1981년(IMDB 기준, 국내에선 1982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국내 개봉 기준으로 잡은 듯) '이블 데드'라는 걸출한 작품으로 등장한 그는 데뷔부터 세상의 주목을 받았던 감독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그의 데뷔작을 인상 깊이 받아들이고 '이블 데드'와 같은 영화를 계속 볼 수 있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이블 데드' 시리즈는 1992년 3편을 마지막으로 멈추었으며 유사한 스타일을 보여주는 영화도 등장하지 않았다. 물론 이후 '심플 플랜' 같은 괜찮은 스릴러를 만들기도 했지만 '퀵 앤 데드' 나 '사랑을 위하여' 와 같은 뻘짓을 하기도 했다. 아니, 사실 감독으로서의 역할보다는 제작, 기획에 치중하여 기다리는 사람들을 더욱 지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런 그가 '스파이더맨'으로 인지도를 회복하면서 21세기에는 기존과는 다른 이미지로 자신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냥 그렇게 되는가보다 싶었다. 그가 원래 하고 싶었던 것은 이런 것이었나보다 싶었다. 다양한 장르를 수용하는 다재다능한 그의 모습을 수긍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런 그가 자신은 변하지 않았다고 말해왔다.

'드래그 미 투 헬' 이라는 작품을 직접 감독하여 제작했음을 알리고, 더불어 내년에는 새로운 '이블 데드'를 선보이겠다고 한다. 그의 데뷔작을 통해 샘 레이미가 스플래터 장르의 대가라고 이해하는 관객들에겐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다. 이제 관건은 그가 한 동안 거리를 두었던 장르의 작품을 어떻게 만들어 내놓을지가 문제다. 엉뚱한 놈이 태어날까 염려가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리라.

 

 

단순하지만 단단하다

영화의 주된 내용은 위에 언급한 것과 동일하다. 장르가 장르이니만큼 플롯이 복잡할 필요는 없었겠지.

한 순간의 실수로 저주를 받게 된 한 여자가 그 저주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한다는 것이 이야기의 전부다. 그 여자는 점성술가를 찾기도 하고, 가재도구를 팔아서 비싼 퇴마의식을 행하기도 하며, 한 밤중에 무덤을 파헤치기도 하는 등 여러 방법을 표현하고 있지만 내러티브가 단순하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단순함을 채우고 있는 온갖 표현과 설정은 상당히 치밀하다.

예를 들어 크리스틴이라는 캐릭터를 보자면 매우 평범한 캐릭터임을 볼 수 있게된다. 착하고 친절하지만 비어있는 팀장 자리를 선망의 시선으로 바라 볼 만큼 내면의 욕망에도 충실한 일반적인 여성일 뿐이다. 그런 그녀가 누군가로부터 저주를 받는다는 상황을 겪을 이유는 좀 빈약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분명 저주를 받게된 원인은 크리스틴이 대출상환연기 요청을 거절한 것에 있다. 하지만 팀장 자리를 원한다고 친절하고 착한 크리스틴이 애원하는 할머니를 외면하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관람을 하면서 어렵지 않게 보여지는 사실을 납득할 수 있는 것은 설정을 뒷받침해주는 이중적 구조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남자친구와 그의 어머니가 통화하는 것을 크리스틴이 엿듣게 되는 장면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자신과 남자친구의 관계를 위협하는 요소를 덧붙여 그녀가 반드시 팀장으로 승진해야 할 욕망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이중 장치는 영화 곳곳에서 발견된다. 영화의 중간점으로 활용되는 애완고양이 살해사건(?) 또한 그런 장치가 있으며, 크리스틴의 과거가 드러나는 연출 역시 그런 역할을 위해서였다. 애초에 착한 캐릭터였던 크리스틴이 점점 욕망에 충실해가고 변해가는 모습의 개연성을 위해선 반드시 필요했을 법한 것이기도 하다. 즉, 기본기에 충실하다.

 

이외에도 설정과 설정이 서로 보완하고 증명하는 형태는 여러차례 눈에 띈다.

심지어 오프닝 5분 자체도 영화의 전반적인 흐름을 암시하는 형태를 갖추고 있으니 구조적인 특성과 그 완성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뭐하나 버릴 것 없이 제 기능에 충실한 장면의 연속이다.

 

변모한 그녀에겐 충분한 동기와 설정이 돕고 있었다.

 

장르적 특성에 충실하다

영화는 분명 메이저 영화이나, 향수어린 B급의 정서가 담겨있다.

그가 '이블 데드'로 보여줬던 바로 그런 것 말이다. 지극히 상업적이고 자극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재미있고 열광할 수 있는 그런 영화이다. 장르적 특성의 충실한 재현이야말로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다.

 

감독은 데뷔작에서 '유머'라는 코드를 적극 활용하여 '스플래터'라는 장르적 특성을 유감없이 표현했는데 그런 특성은 이 영화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사실 '공포'라는 감정과 '유머'라는 코드의 조합은 의외의 것이기도 하다. 긴장을 요구하는 장르에서 오히려 이완시키는 요소를 집어넣다니?

하지만 잔뜩 긴장한 상황에서 터져나오는 웃음은 모순적이지만 묘한 매력이 있다. 마치 뜨거운 욕탕에 몸을 담그고 시원하다~라고 말하는 정서와 비슷할라나? 아니면 말고. 아무튼 터져 나오는 웃음은 좀 더 복잡미묘한 감정을 담고 있어 그 기분은 코미디를 보면서 느낄 수 있는 것과는 애초에 다르다.

(게다가 비명을 질러도 부족할 잔인하고 더러운 장면에서 웃음을 터트리게 만드는 스플래터 영화는 같은 공포영화라도 비교하기 힘들다)

 

영화의 유머코드는 대부분 크리스틴과 그녀를 저주한 게너시 부인이 조우하는 장면에 많이 치중되어 있다. 주차장 씬에서부터 발동을 건 이 설정은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도 계속 유지된다. 하지만 비슷한 상황, 반복되는 형태에도 질리지가 않는데, 그것은 스플래터 영화 특유의 매력 때문이기도 하고 더불어 이 영화에서 유머 코드를 다양한 형태로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기인한다.

두 여성의 난투극에서 활용된 다양한 소품을 통해서 웃기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감독의 명작 '이블 데드'를 오마쥬한 듯 한 연출도 엿보이며, 일부러 반복되는 행위를 통해서 결국은 웃음을 터트리게 만들기도 한다. 왠만한 코미디 영화에서도 이처럼 다양한 표현을 보여주기는 쉽지 않을 듯.

 

감독과 두 주연배우. 감독의 장난기어린 표정에서 이런 영화가 나오나보다

 

이래저래 좋은 얘기만 늘어놓은 듯 한데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정도로 생각하면 좋을 듯 하다.

'공포영화'라는 장르 때문에 진입 장벽이 조금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런 장르적 특성이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설 수 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올해 상반기 중 최고의 영화로 뽑아도 부족함이 없으리라 생각이 든다.

 

 

+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용도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맨데이트 픽쳐스가 소유하고 있습니다.

+ 출처는 국내 공식 블로그 임을 밝힙니다.

 

 

★★★★☆

'보는 것'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울에서 차량을 유지하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2) 2009.06.29
도서관 내란 - 본격적으로  (0) 2009.06.28
청록다방 김양의 행보  (7) 2009.06.25
소림소녀 - 잊고싶다  (2) 2009.06.23
부호형사 - 신선하다  (8) 2009.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