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긴 하다

 

거북이 달린다 (2009)

 

감독 : 이연우

각본 : 이연우

 

 

'추격자'로 작년 한 해,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김윤석에게 부담이 될만한 시간이 다가왔다.

예전과 다르게 관객들은 그의 행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그런 그가 낯선 환경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는 나름 흥미로운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는 '거북이 달린다'를 택했다. 그의 선택은 현명했을까?

 

어디선가 보암직한 캐릭터인 '조필성'

그는 충남 예산에서 형사로 일하고 있다. 정의감과는 거리가 먼, 적당히 뒷돈도 챙기면서 적당히 부패한 시골형사다. 그런 그가 1억원의 상금이 걸려있는 탈주자 '송기태'를 쫓기 시작한다. 온갖 수치와 모욕을 당하면서도 송기태를 쫓는다. 그가 바라고 얻은 것은 무엇일까?

 

어? 어디선가 본 것 같아

앞서 슬쩍 언급한 것처럼 김윤석이 연기한 '조필성'은 형사를 소재로 한 한국영화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그런 캐릭터다. 재미있는 캐릭터이긴 하지만 기존 다른 작품들을 통해서 자주 접해왔던 컨셉의 캐릭터이기에 신선한 감은 별로 없다. 영화를 보는내내 생각난 인물은 '강철중'이다. 부패한 형사라는 컨셉이야 '투캅스'에서 부터 많이 활용해오고 있지만, 정필성 그는 설정상으로 강철중과 참 많이 닮았다.

이미지로는 '추격자'의 '엄중호'와도 유사하지만, 여러 설정을 고려한다면 '강철중'만큼 닮은 인물은 없으리라.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닮아간다)

캐릭터만 유사한가? 본 작품의 기본 설정에 있어서도 유사한 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직업, 투 톱 시스템, 서포트하는 조연 캐릭터의 성향, 주인공 캐릭터의 방향성,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장면의 설정, 등 유사하다고 느끼는 점들이 드러난다. 이 작품은 그런 아류작으로 끝날 것인가.

 

재미있어!

극장을 나서는 다른 관객에게서 영화가 재미있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관객마다 재미의 기준은 다 제각기이지만 20대 초중반 남자로 보이는 저 관객이 발견한 재미는 무엇일까?

누가 나에게 이 영화의 장르가 무엇이냐 라고 묻는다면 난 망설이지 않고 '코미디'라고 답하겠다.

그만큼 이 영화에서 '유머'의 비중은 매우 높다.

그리고 유머라는 코드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빈번하지만, 적절하다는 느낌이 있다. 그리고 그만한 노력을 기울였구나 라는 생각도 든다.

 

영화는 분명 조필성이 송기태를 쫓는 설정이 메인 테마가 될 것이다. 하지만 조필성과 송기태가 첫 조우를 이루는 시점은 영화 상영 후 30분이 훌쩍 넘긴 시점인 것이다. 그럼 그 시간동안 영화는 무엇을 보여주고 있나? 영화는 그 시간동안(35분 내외, 핸드폰 시계로만 체크를 해서 정확성이 좀 떨어진다) 주인공인 조필성을 비롯한 조연 캐릭터에 대한 기본 설정을 한다. 이 시간이 차후의 플레이타임을 지탱하는데 매우 중요하게 사용된다. 바로 '유머' 코드를 살리기 위한 투자인 것이다. 조필성과 그 일당이 어떤 상황에서 돌아이같은 행동을 보이더라도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웃음을 자아내게 만드는 밑바탕이 이 시간동안에 마련되어 진다. 영화를 보다보면 분명 진지하고 심각한 상황이지만 관객들은 웃고있는 상황이 빈번하게 일어나게 되는데, 바로 투자의 결과라고 보여진다.

 

유머를 살리는데 한 몫하고 있는 조연 캐릭터들

 

조필성이라는 이 형사를 통해서 보여지는 이야기는 그냥 단순하다.

형사로서 일은 하고 있지만 왠지 항상 궁핍한 상황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그의 아내는 만화방을 운영하면서 더불어 양말을 정리하는 부업을 하고 있다. 그런 그가 돈에 미련이 많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돈을 쫓던 것이 송기태를 쫓게되지만 차후 그의 심정은 미묘하게 변화하게 된다. 성장이라고 말하기엔 좀 무리고 어른으로써 그냥 심정의 변화라고 보여진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엔 항상 딸이있다.

앞서 심정의 변화가 보여진다고 하지만 사실, 본질은 그대로인 것이다. 그가 행동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가족이다. 돈을 원하는 것도, 무리를 하면서까지 송기태를 잡고 싶은 것도 그 이유는 사실 하나인 것이지. (이런 일괄된 목표와 추진력, 이런 점에서까지 강철중의 그림자가 보이는구먼. 뭐 눈엔 뭐만 보인다더니 ㅋㅋ)

이런 특성이 개인적으로 매력으로 다가서게 되었다. 표면적으론 다채롭게 보이는 듯 하지만 사실 상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는. 돈을 쫓던 그가 본질을 드러내게 되자 가족을 사랑하는 가장의 명예를 우선시하는 모습은 식상하고 나발이고를 떠나서 동감할 수 있는 그런 특성인 것이다. (내가 유부남은 아니지만)

 

유머도 재미있고, 캐릭터의 개성도 흥미롭다. 어깨의 힘을 빼고 치장하려 하지 않으니 편안하게 다가설 수 있다.

 

뭔가 어설퍼

하지만.

어정쩡하고 애매한 특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기존 형사물과의 유사성도 있고 등장하는 캐릭터 중에 중요 캐릭터로 활용되는 존재의 이미지가 애매하다는 느낌이 있어 작품의 이미지 자체도 흐려놓고 있다.

특히 송기태.

조필성과 투 톱으로 가는 이 캐릭터는 꽤나 어중간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에게는 경주라는 옛 애인이 있다. 그 애인을 통해서 전달되는 이미지는 애증이다. 애틋하게 사랑하는 연인의 모습을 보여줌으로 도둑놈이자 탈주범이라는 악인의 이미지를 희석시키고 있다. 분명 송기태는 악인의 캐릭터지만 이미지만으로는 선과 악의 구분이 불분명한 느낌이다. 그리고 그런 이미지의 애매함은 죽도록 그를 쫓고있는 조필성의 노력마져도 그 가치를 희석시킨다. 경주 캐릭터가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한 필수 캐릭터였을지도 모르지만 그 캐릭터로 인해서 악인이 악인답지 않은 이미지를 지니게 되어버렸다. 부득이한 희생이였을까.

 

스릴러로 발전할 수 있는 작품이었지만 작품 곳곳에 유머 코드를 다수 포진하여 그런 특성도 일정부분 포기한 것으로 보여진다. 보는 내내 자주 웃을 순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웃음으로 캐릭터의 진심도 일부 묻혀버리고 있다. 그냥 관객이 보기엔 어설픈 캐릭터가 나와서 보이는 슬랩스틱 코미디 같은 것이겠지.

 

 

주말에 가볍게 웃고 싶다면 추천할 수도 있겠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기대하기엔.

 

덧 : 이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참 좋았던 장면은 비교적 초반에 발견할 수 있었다. 다름아닌 김윤석과 견미리의 베드씬 같지 않은 베드씬인데. 거기서 김윤석이 견미리의 구멍난 속옷을 보는 장면이 연출된다. 그 장면은 조필성의 현재 상황과 동기를 한 방에 해결하는 좋은 장면이라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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