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 재래시장의 기억

도서관에서 귀가하던 중 방향은 일치하기에 방향을 영등포 재래시장으로 향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모습인데 여전하구나.

몇 해 전부터 재래시장 현대화 작업을 한다고 하더니만 이곳은 그대로다. 지붕만 조금 손 봤나?

 

폰카로 찍은데다 조명도 원활치않아 흔들렸지만 어렸을 때 기억, 그대로다

 

어렸을 때 부모님 손에 이끌려 몇 번 찾아오곤 했었다.

이야기를 들은 사람도 있겠지만, 어렸을 때 부모님과 함께 찾아온 상황에서 부모님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다. 4-5세 정도였을거다. 유치원도 들어가기 전이니. 아버지 손을 잡고 다니다 어느 순간 손을 놓치고 그대로 가족들을 잃어버렸다. 위의 사진 속에선 좀 한적한 모습이지만 그 때만 해도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었다.

그리고 난 별 고민안하고 집까지 걸어서 찾아왔다. 평소 자주 오가던 지역이니 익숙하기도 했을 것이다.

어렸으니 별 생각도 없었겠지. 내가 없어진 것으로 인해 식구들은 어떻게 생각할지도 생각 못했던 것 같다. 그냥 집에와서 혼자 TV를 보고 있었으니.

경찰 공무원으로 근무 중이시던 아버지께서 직원들을 끌어모아 날 찾고 계셨던 모양이다. 집으로 찾아온 경찰들이 정말 한 부대는 되었으니. 정확한 수는 기억안나나 집을 가득 메우고도 남을 정도였던 것만 기억난다. 아마 79년이나 80년 정도였으리라. 너무 어려서 그 나이때의 기억은 거의 남아있는 것이 없지만 워낙 강렬했던 기억이고, 자라면서도 어머니께서 자주 얘기하셨던 일이라 어느 정도 생각이 난다.

 

사진 속에서 통로 가운데 자리잡은 곳은 장사를 안하는 듯 덮개가 덮여 있지만, 조금 더 가면 곳곳에서 먹거리 장사를 하고 계신 아주머니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아직 해가 지기 전이지만 이미 닭발이나 순대를 안주 삼아 소주 한잔을 하고 계신 어르신들도 발견할 수 있었다. 난 지나치면서 입 맛만 다셨지만.

 

경기가 안좋다 안좋다 하지만, 이곳에 계신 분들이 다른 선택이 있겠는가. 그냥 어제와 마찬가지로 나와서 장사하시고 내일도 똑같이 이곳에 나오시겠지. 물론 다른 곳에 계신 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영등포시장 입구, 옆은 옛 영보극장 자리다

 

사실 기억에 남아있던 영등포 재래시장에 비해서 규모는 많이 축소된 분위기다.

입구 주위로도 옛날 점포들이 아직 남아있긴 하지만 이전같지 않다. 저 앞에서 옛 경원극장까지의 라인은 유명상권으로 사람들이 사람들도 많고 유명 브랜드 매장들이 늘어섰던 곳이다. 지금은 그 영광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다.

 

시장입구 옆의 건물은 현재 상가건물로 활용되고 있지만 옛날엔 극장 터였다.

80년대 당시 영등포 4대 극장! 중 하나인 영보 극장이 위치하던 곳이다.

4대 극장이라고하니 뭔가 거창한데 그냥 유명 상권으로 알려진 영등포 내에 있던 극장을 말하는 것 뿐이다. 연흥극장, 경원극장, 명화극장 그리고 여기 영보극장이 영등포 내에 있던 극장들이다.

 

여기 영보극장에서 87년 로보캅 1편을 아버지와 동생이랑 봤던 기억이 있다. 당시 로보캅은 중학생 이상 관람가 (지금처럼 연령으로 구분한 것이 아닌 학년으로 구분했었다) 였는데, 당시 난 국민학교 6학년이었다. 원칙대로 하자면 볼 수 있는 나이가 아닌 것이지. 그때 그걸로 얼마나 고민했는지. 하핫.

하지만 이곳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두살이나 더 어린 동생까지도.

 

지금 극장들은 남아있지 않다.

영보극장은 주차장으로 변했다가 근래에 저와같은 모습으로 변모했고, 경원극장은 찜질방으로 변했고, 명화극장은 현재 성인나이트 영업중이다. 그나마 연흥극장만이 멀티플렉스로 변해서 계속 운영을 해오는 듯 했지만 몇 해전 다시 두들겨부수고선 몇 해째 계속 공사중이다.

 

70년대 생 영등포 토박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기억일지도 모르겠다.

 많은 것이 변했지만 여전히 그 때 그 모습을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는 곳도 있다.

청계천의 시끌벅적한 시장도 사라지고, 피맛골의 정겨운 골목도 사라지고, 현재도 많은 곳들을 뒤엎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곳은 나를 완성하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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